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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고향 동네 논밭에 감나무와 매실나무 묘목을 수십 그루 심었다. 예전 같으면 나무를 심은 것으로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재작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고향 논밭을 내가 관리하기로 한 뒤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땅에 심은 작물들 커 가는 것을 보고 경작자의 사람 됨됨이까지 헤아리는 게 시골 인심이다. 나무를 잘 키워야 했다. 나는 틈틈이 고향을 오갈 때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나무 키우는 법을 묻거나,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나무 재배 관련 영상들을 찾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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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작년 심은 나무들을 맨처음 본격적으로 전정해야 하는 시기다. 가지치기, 곧 전정(剪定) 요령을 꼼꼼히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지난 겨울에 스치듯 본 영상 하나를 복습하듯 다시 찾아 보았다. 감나무나 매실나무 등 유실수의 강전정과 약전정을 주제로 하는 영상이었다.
전정은 나무 가꾸고 기르기의 핵심이다. 전정은 식물의 겉모양을 고르게 하고 웃자람을 막으며, 과실나무 따위의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곁가지 따위를 자르고 다듬는 일이다.
강전정은 가지치기를 할 때에 가지를 많이 잘라 내는 것을, 약전정은 조금만 잘라 내는 것이다. 원칙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강하고 튼튼하게 키울 가지는 강전정을 하고, 가지가 자라는 것을 적당히 통제함으로써 지나치게 강하고 튼튼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싶으면 약전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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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정과 약전정 원칙은 감나무나 매실나무 등 유실수를 비롯한 모든 수목류에 두루 적용된다. 그것은 나무에 사람이 개입해 수형을 균형 있게 만들고 좋은 열매를 거두게 하자는 ‘이기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무에게도 유익하다. 가지들이 고루 튼튼하게 자라면 병충해에도 강해지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나는 이런 내용을 충남 서산에서 매실나무와 감나무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민이 올린 영상을 보다가 처음 들었다. 강의를 보다가 강전정과 약전정에 관한 궁금증이 추가로 생겨 댓글에 질문을 했다. 가지 상태에 따라 그에 적용되는 몇몇 생육 특성이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을 받았다. 강전정과 약전정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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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정과 약전정 원칙을 듣고 배우면서 그것이 무슨 처세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는 가지가 잘리는 ‘고난’의 상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다. 가지는 크게 잘리면 잘릴수록 더 크고 튼튼하게 자라려고 기를 쓴다. 작게 잘리면 애쓰는 힘이 적어져 적당히 천천히 자란다. 나무 자체에 내재된 고유한 생육 특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나무는 자신의 그런 잠재력을 알기 때문에 ‘고난’을 고난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난은 우리 자신의 영혼과 몸을 강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험한 세상을 너끈히 살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 실수와 실패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 영혼과 몸에는 단단한 갑옷이 덧입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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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가지가 잘리는 일은 슬프고 절망스럽지만, 우리는 그런 슬픔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면서 성장한다. 우리는 그럴 수 있으며, 그래야 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