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교의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2021, 빨간소금)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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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나라 중국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개설하고,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중국어 선생님을 초빙했다. 교장이 장차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의 교류가 늘 것이라고 보고 내린 결단이었던 것으로 안다.
과연 군 전역 직후인 1992년 한중 수교가 맺어졌다. 그해 2학기 복학을 해서 그사이 학교에 중어중문학과가 새로 개설된 것을 알았다. 그즈음부터 대학가에는 어학연수 명목으로 대학생들을 대규모로 모집해 중국 각지에 보내는 교육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번졌다. 나도 1994년 휴학을 하고 전국어학연수단에 합류했다.
베이징 칭화 대학과 어언 대학을 오가며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배웠다. 기숙사와 거리에서 만난 중국 학생들과 시민들은 대체로 개방적이었고 친절했다. 더듬거리는 중국어로 질문을 해도 대답을 잘 알아듣게 하려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우리는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베이징 시장과 골목을 돌아다녔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서 ‘대국’ 중국의 힘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밀레니엄을 코앞에 앞둔 1999년, 어느 연구원 산하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중국을 한 번 더 방문했다. 대학원 학생회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회장과 함께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의 하나였다. 우리는 중국 사회과학원을 매개로 북한의 국립대학인 김일성대학 대학원과 학술 연구 교류 사업을 추진해 보고 싶었다. 나는 중국 방문 당시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베풀어 준 후의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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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내 인상은 시종일관 호의적이었다. 20세기 중반 이래 사회주의 체제를 굳건히 고수하면서도 유연한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세계 각국과 교류하고 협력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거기까지였다. 중국 전역이 값싼 노동력과 생산 라인을 따라 찾아온 세계 자본의 ‘거대공장’이 되고, 자본주의적인 경제 시스템이 중국 인민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자 자본주의 특유의 병폐와 한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중국은 그런 문제를, 불의하고 탐욕스러운 자본가처럼 처리하기 시작했다. “엄연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라 고집하는 중국”(289쪽)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아이러니에 깊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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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2021, 빨간소금)는 저자 홍명교가 중국에서 만난 젊은 저항자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책 머리의 ‘나오는 사람’에 소개된 저항자들만 21명이다. 이들의 이름 일부는 실명이지만 일부는 익명이다. 한 인물이 둘이나 셋으로 나뉘어 이야기되기도 한다. 중국 실정법에 걸리는 문제와 무관하게 이름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위험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위험한’ 현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방증이다.
저자 홍명교는 대학 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운동에 눈길을 준 이후 꾸준히 노동조합과 사회운동단체를 기반으로 사회운동을 펼쳐 온 젊은 활동가이자, 켄 로치 같은 사회파 영화 감독을 꿈꾸는 예술인이다. 정치나 제도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일 못지 않게 이를 추동하는 사람의 힘을 누구보다 강하게 믿는 성향의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일 것이다. 중국의 ‘젊은 저항자들’은 저자의 손끝에서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아주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들의 말투와 표정과 몸짓,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숙제를 스케치하듯 세밀하게 보여준다. 무섭게 질주하듯 변해 가는 중국 사회를 향한 청년들의 몸부림과 목소리가 때로는 뜨거운 소설 문장처럼, 때로는 냉철한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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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가 중국 체류 1년의 기록을 기행문 형식으로 남기면서 독자들에게 진짜 들려 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중국의 ‘젊은 저항자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이제 더는 저항의 불씨를 살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저자의 설명을 빌리면 2018년 봄부터 이듬해까지 저자가 만난 이들을 포함한 130여 명의 활동가가 체포됐다고 한다.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진정한 사회주의 체제를 꿈꾸며(체포된 저항자들 대부분이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주의자들이다.) 공부하고 연대 활동을 펼치다가 구속되고 연금 조치를 당했다.
저자는 이들 사라진 중국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 줌으로써 ‘국제적 연대’의 단초를 마련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보다 더 큰 목적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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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아니 전 세계가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저항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산다. 개인은 희망을 잃었고 사회는 전망을 버렸다. 나는 414쪽의 사진과 사진 설명 글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진 속 주인공 청년은 등받이를 가슴에 대고 앉아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쪼그려 앉아 몇 시간 동안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414쪽)
중국 남부 선전시에 있는 폭스콘(세계 전자제품 위탁생산 서비스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홍하이정밀공업유한공사의 해외 상호)은 2010년대 ‘자살 공장’으로 악명이 높았다. 2010년 5월에는 8명이 자살과 실신으로 사망했다.
“2010년 5월 26일 늦은 밤, 동료로부터 10분 전에 있었던 투신 자살 소식을 들은 한 노동자가 롱화 공장 인근의 대형 쇼핑몰 RT마트 앞에 서 있다가 쓰러져 사망”(302쪽)
죽은 사람들은 아파트형 교도소처럼 생긴 거대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하루 12시간 동안 로봇처럼 기계적인 단순 노동을 하던 노동자들이었다. 매월 수만 명의 노동자가 일을 그만둘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들을 돕기 위해 달려온 중국 전국의 노동자, 학생 등 청년 활동가들은 모두 감옥에 갔다.
“시스템이 만든 절망적 사회에 맞서 ‘저항하는 나’,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주체화의 경로가 사라질 때 어떤 행동양식과 마음의 짐을 품고 사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거대한 공장은 (중략) 낮은 임금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공회(노동조합)를 만들려고 하면 죄다 체포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키거나 좆을 수 있을까?”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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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동아시아 송곳들의 지구전이 이제 시작됐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저자가 베이징에서 만난 어느 익명의 활동가가 쓴 글(‘지구전을 논하다’)에서 영감을 받은 문장처럼 보인다. 희망과 전망을 찾기 힘든 세상을 살아 가기 위한 저자 나름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지구전을 논하다’에는 “인간의 길에는 창상(滄桑)이 필요하고, 역사는 탄탄대로가 없다. 보기에 가장 용이한 경로는 왕왕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게 된다. 굴곡이 많아 보이는 길이 지름길이다.”(356쪽)라는 구절이 나온다. 저자는 ‘창상’을 “노련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리 사전을 찾아보니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 다루고 있다. 희망과 전망을 잃은 이들이 깊이 새겨볼 만한 화두다.
● 홍명교 씀(2021),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빨간소금, 356쪽, 1만 8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