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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14. 2022

“여보, 당신도 노조 할 수 있어!”

《노동조합은 처음이라》(신광균, 2022, 빨간소금)를 읽고

1     


아내는 병원에 다닌다. 대학병원 규모까지는 아니어도 지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곳이지만 아직(!) 노동조합(노조)이 없다. 가끔 아내와 직장 이야기를 나누다가 ‘헐’ 소리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을 듣는다. 대부분 병원 안에 노조가 없어서 발생하는 일들처럼 보인다. 그럴 때마다 말했다.     


“노조를 만들어 봐.”     


처음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병원 최고 경영자가 ‘노조가 만들어지면 병원 때려치운다’고 말한다면서 맥없이 한숨만 쉬었다. 현 직장 경력 16년차, 전체 경력 30년차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즈음에는 “한번 나서 볼까.” 하고 관심을 보인다. ‘직장 짬밥’이 가져온 힘이겠지만, 아내에게서 노조 깃발을 앞장서서 휘두르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2     


이 책은 아이티(IT) 기업인 게임업체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지내던 30대 직장인이 노조의 ‘ㄴ’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인 노조 설립 분투(奮鬪)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싸우거나 노력하는 일이 ‘분투’이니 역시 노조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지레짐작하기 쉽겠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글쓴이) 막상 내가 보고 겪고 느껴보니, 내 생각과는 아주 달랐던 노동조합에 대한 해명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4쪽, ‘이야기를 시작하며’에서)   

  

노조 하면 떠오르는 상투적인 이미지나 표현들이 있다. 거친 시위 현장 모습, 경찰과의 긴박감 넘치는 대치 장면, 불법 시위, 시민 불편과 엄단과 같은 언어들, 깃발과 조끼와 구호 등 낯선 상징물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나 표현들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노조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노조 설립의 장도에 나섰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쌓이고 쌓인 “깊은 빡침과 답답함”(12쪽)을 가만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빡침과 답답함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겪는 운명 같은 감정이다. 저자는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뭉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결론”(19쪽)을 내렸다.  

   

3     


책의 1부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노동조합 설립 과정과, 이후 노조 활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사측과의 교섭 과정이 “노동조합 분투기”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2부에는 노조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운영과 관리, 행사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는 노조 설립과 교섭 과정이 박진감 넘치는 소설 속 장면처럼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다. 저자는 그 과정들을 분투라고 휘갑했지만, 나는 마치 즐거운 잔치나 놀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라 장담한다.   

   

사람들은 노조를 특별한 의식(?)을 가진 일부 노동자들만의 전유물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일터에서 겪는 ‘헐’ 소리 나는 일은 능력이 떨어지고 회사 일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문제 사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을’들의 일이다.     


저자 역시 노조 설립을 한 뒤 공식적으로 가입 신청을 앞둔 상황에서 가입자가 적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저자의 ‘꼬꼬마 노조’는 설립 2시간 만에 가입자 100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노조 깃발을 꽂는 일은 어렵지만, 노조를 바라는 사람은 많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이 개별적이라 절대 뭉치지 않을 거라 장담”(160쪽)하는 게임 업계에 노조가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노조에 대한 우리 시선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고, 근거 없는 막연한 편견에 기초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모든 노조가 만능이고 최선은 아니겠지만, 이 땅의 ‘을’들에게 노조는 여전히 강력한 우군이다.     


4     


고용노동부의 2020년 전국 노조 조직 현황을 보면, 노조 가입 조합원은 280만 5천 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교사와 공무원 제외) 1,917만 1천 명의 14.2퍼센트를 차지한다. 노조 조직률은 2019년 12.5퍼센트다. 내가 속한 직군인 교사직은 노동조합 가입률이 10퍼센트 중반 수준(16.8퍼센트)으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임금 노동자는 무노조 상태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노조에 대한 열린 시선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미 노조에 발을 디딘 노동자나, 노조에 가입하고 싶지만 반신반의하는 노동자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저자의 언급은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바뀌지 않을 상대를 원망하는 것보다 우리가 먼저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큰 효과와 의미가 있다. (중략) 우리가 왜 이 힘든 짓(?)을 하고 있는지 더 열심히 알리는 것이다. 바로 이해와 공감이다. 사람들은 알게 되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공감한다. 그리고 공감하면 힘을 나눠준다. 결국 노동조합의 힘은 이런 수많은 ‘을’들의 힘이 모였을 때 비소로 생기는 것이 아닐까?” (166쪽)    

 

5     


나는 아내에게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건네면서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여보, 당신도 노조 할 수 있어!”

    

● 신광균(2022), 《노동조합은 처음이라: 게임회사 노조 이야기》, 빨간소금, 183쪽, 1만 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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