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May 05. 2023

공자, 한 인간의 초상

크릴의 《공자: 인간과 신화》와 안핑 친의 《공자 평전》을 읽고

1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이름에 ‘정신문화’라는 말이 들어 있는 국책 연구기관 산하의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우리 전통 사상이나 역사, 고전 문헌에 대한 관심사를 학문적으로 펼쳐 보기 위해서 들어간 곳이었으므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표현이 불러온 충격이 꽤 컸다. 


한편으로 내 머릿속에는 공자로 대변되는 유교 사상의 영향과 그로 인한 우리 민족의 전근대성, 혹은 부정적인 의미의 보수성이라는 틀에 박힌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에서 까닭 모를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다만 당시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공자나 유교에 대한 ‘마녀 사냥’ 같은 분위기가 훨씬 더 지배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자가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유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공자와 유교를 둘러싼 세속적인 이미지에 기대어 이들을 향해 공격을 가하곤 한다. 당시는 새 천 년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미래와 새 시대를 향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커진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와 옛 시절을 상징하는 공자와 유교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비난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2


가만히 상상해 본다. 지금 공자가 살아 돌아와 저 충격적인 제목의 책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학이, 1:1-3) 하고 한 마디 내뱉고 웃고 말까.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병으로 여기고,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君子 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위령공, 15:18)라며 침울하게 고개를 숙일까. 


지난 몇 주간 내 손을 떠나지 않은 공자 전기 두 편을 읽은 소감에 따르면 전자의 모습에 가까울 것 같다. 물론 공자는 속으로 세상 사람들이 타락했다며 분명 개탄하겠지만 말이다.


3


미국 시카고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중국고대사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H. G. 크릴이 쓴 전기 《공자: 인간과 신화》(아래 ‘《공자》’)와, 미국 콜럼비아대학교에서 중국사상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하면서 유교와 도교 등 중국 사상을 연구해 온 안핑 친의 전기 《공자 평전: 권위와 신화의 옷을 벗은 인간 공자를 찾아서》(아래 ‘《공자 평전》’)에 그려진 공자상은, 일반적으로 동양 문화권에서 보수 반동 이데올로기의 뿌리이자 원형처럼 그려진 공자 모습과 다르다. 


크릴은 공자를 민주주의적 사상과 태도의 실천가로, 안핑 친은 “자기 탐구와 자기 개혁의 힘든 일”(《공자 평전》, 10쪽)을 좇아 걸으면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세상을 바꾸려 했던 개혁가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이들 두 탁월한 역사 연구자가 방대한 분량의 고전 문헌 고증과 비평 절차를 통하여 공자의 생애와 사상을 재구성하면서 공통적으로 그려 내고자 했던 공자상의 초점은 ‘인간’이었다. 당신의 기대와 달리 공자는 ‘신’이나 ‘성인’과 같은 반열에 있던 존재가 아니었다.


공자는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았거니와,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다는 숭고한 확신감도 없었고, 제자들이 단순한 축음기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가 되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현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략) 그는 제자들을 이치로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 문제를 덮어두었다. - 크릴, 《공자》, 111~112쪽.


공자가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莫我知也夫]”(헌문, 14:37-1)며 “이제 말을 삼가려 한다.[予欲無言]”(양화, 17:19-1)고 하자 자공이 반대했다. (중략) 이와 같은 침묵으로의 물러섬은 어떤 교양이나 어떤 삶의 예술보다도 한 수 위의 것이다. 공자는 말을 삼감으로써 자신에게 자연과 같은 차원의 힘을 부여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그는 자기 실패의 무게에 짓눌리며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이 이 사람의 모순이었다. - 안핑 친, 《공자 평전》, 258쪽.


3


도그마(dogma)는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30대 초반 나이였던 20여 년 전쯤 처음으로 《논어》를 읽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유의 왜곡된 사상 열풍이 불어닥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마도 공자나 유교 같은 말에 덧씌워진 세속적인 도그마의 이미지에 푹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나 감정의 울림 하나 없이 이어지던 축자적인 《논어》 읽기에서 인간 공자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몇 년 전 《논어》를 다시 펼친 뒤 몇 번을 꼼꼼히 읽었다. 그 전에는 도대체 읽은 기억이 없는, 지팡이를 들어 예법을 잃은 친구 정강이를 치고 제자들에게 농담을 하는 공자의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그런 인간 공자의 모습에서 도그마를 읽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나 크릴과 안핑 친이 각기 쓴 평전을 읽고 난 뒤로는 공자의 진면목의 일부가 어렴풋이 머리에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고 살아 있어야 하는 평범했지만 위대했던 한 사람의 조그만 초상이었다.


- H. G. 크릴 씀, 이성규 옮김(1988, 2018), 《공자: 인간과 신화》, 지식산업사.

- 안핑 친 씀, 김기협 옮김(2017), 《공자 평전: 권위와 신화의 옷을 벗은 인간 공자를 찾아서》, 돌베개.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