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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03. 2023

학교 갈등 사안 전담 인력 시스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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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교장과 교감은 수업이 없다

몇 년 간 학교폭력(학폭) 전담교사와 학생부장으로 지내면서 사안 처리 과정 중 하나로 ‘보호자 갈등 조정 모임’을 운영했다. 학폭 사안은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사안이 경미하든 중하든 신고·접수하는 학생·보호자 입장에서는 학폭 처리 시스템에 문을 두드리는 순간부터 의식이나 감정 통제에 쓰는 에너지의 밀도가 높고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관련 당사자들에게 제삼자의 매개나 조정이나 중재가 반드시 요구된다. 그런 구실을 하게 하려고 갈등 조정 모임을 만들어 운영한 것이다.


최신 개정 학폭 처리 지침에서도 교육공동체 회복을 위해 회복조정 및 학교장 자체해결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학교 현실에서는 회복조정 절차 활용 및 자체해결을 공식적으로 설명하고 안내하는 절차 자체를 갖기가 어렵다. 사안 조사 과정이나 보호자 확인 통화 시 지나가는 말 정도로 소개하는 수준이다. 그마저도 사안을 은폐, 축소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주저한다. 갈등 조정 모임은 그런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마련한 일종의 분쟁 조정을 위한 자치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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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조정 모임은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진행하였다.


가. 사안 접수 후 사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폭력전담기구를 열어 처리 방향을 논의한다.
나. 학폭전담기구의 처리 방향 논의에서 조정이나 중재의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라고 확인된 경우(조사 단계에서 사안과 관련된 양측 학생이나 보호자에게 사안 처리 절차 및 방법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안내하면 조정이나 중재를 통한 화해 선에서 마무리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임.) 갈등 조정 모임을 열어 사안을 객관적으로 공유하고 관련 학생 및 보호자 전원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갖기로 결정한다.
다. 내부 협의 절차를 거쳐 갈등 조정 모임 일정을 잡는다.
라. 간사(학폭 전담교사)가 학생 및 보호자에게 갈등 조정 모임을 개최하기로 결정한 과정을 설명하고 일정을 전하면서 참석을 요청한다. 담임 교사의 협조를 얻어 통지하기도 한다.
마. 갈등 조정 모임을 개최한다. 학생, 보호자, 학생부장, 학폭 전담교사 등이 자리에 함께하는데, 보호자들은 거의 대부분 참석한다.(피해 관련 학생 측에서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할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경우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처리 방향에 관한 의사를 밝히는데, 화해 중재가 대부분이다.)
바. 학폭 전담교사가 간사 역을 맡아 참석자 모두에게 사안을 보고하여 공유하고, 참석자들에게 사안 처리 방향 등에 관한 의사를 확인한다. 대부분 진정한 사과를 통한 화해 종결을 원한다. 사과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학생·보호자들은 재발 방지 약속 및 유사 사안 재발생 시 가중처벌 동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서면 확약서를 추가로 요구한다. 이때 어느 한쪽에서라도 화해 종결을 원하지 않으면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하면 된다.
사. 합의된 사안 처리 방향이 사과(또는 재발 방지 확약 포함)를 통한 화해 종결로 나타나면 정식 화해 일정을 정해 사과식을 진행하거나 서면 확약서를 전달하고 사안을 종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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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등 조정 모임이 사안 관련 주체들에게 고조된 감정과 의식의 냉각 절차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점으로 꼽는다. 갈등 조정 모임에서 학폭 전담교사가 일체의 판단과 평가가 배제된(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건조한 문장들로 사안을 보고하는 절차를 거치면서‘나’와 ‘우리’의 입장과 감정, 생각에 치우쳐 있던 관련 주체들이 사안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바라보면서 ‘너’와 ‘그들’의 입장과 감정, 생각을 떠올려 보는 객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종의 위계 구조에서 일어난 폭력 사안이나 해묵은 관계 속에서 누적된 부정적인 감정 다툼이 원인이 된 사안 등은 애초 중재나 조정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고, 실제 그렇게 진행된다. 관련 주체들이 사안 접수 단계에서부터 곧장 신속하게 처리 절차를 밟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사안들 중에는 이런 ‘악성’ 사안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악성 사안 유에 속할 만한 사안인 경우라도 중재나 조정 절차를 안내하면 대부분 적극적으로 원했다. 나는 이것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갈등 사안의 해결과 관련하여 교육 주체들이 일체의 소통을 거부하고 법과 규정에 따른 처리만을 능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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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이초 선생님의 비극적인 사건의 향방이 학교 민원 처리 방법 개선과 부적절 민원의 법적 제재 강화 쪽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이 예고한 교사 면담 앱 예약제와 교권 침해 법적 분쟁 시 소송 지원,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기로 한 부적절 민원인을 대상으로 하는 법적 대응(기관 명의 고발) 등이 그것이다. 교권침해 사안의 학생부 기재 방안 역시 법적 제재 강화 차원의 해법이다.


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최종적으로 어떤 해결 방법이 나오든 교육 주체들 간의 대화와 소통을 통한 공적 해결 절차가 함께 마련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라고 본다. 갈등 조정 모임이 의미 있게 진행되었다고 자평하는 것은 우리 학교가 사안 당사자들에게 문제 해결과 관련된 학교 내 공적 절차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뢰의 시작은 만남과 대화를 통한 소통이다. 그런 소통의 자리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마련되어 이루어지니 신뢰가 생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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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조정 모임은, 학생부장이나 학폭 전담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 시수 경감제를 통해 수업 시수를 줄이면서 벌충한 시간과 에너지 덕분에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어려움은 있었다. 수업 시수를 줄이기는 했지만 주당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10시간의 수업은 시간에 쫒기게 한다. 사안 조사, 학생(목격자 포함) 상담, 관련자들과의 수시 대화 및 전화 통화, 내부 정보 공유 및 보고, 업무 협조 요청 업무 관련 교사 협의 등으로 이어지는 사안 처리 절차상의 갖가지 일들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우선이다. 학교 내 문제나 구성원 간 갈등을 해결하는 데 법이나 지침이 있어야 하지만 그 법과 지침을 운영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힘과 여유가 있어야 법과 지침이 애초 취지에 맞게 운용될 수 있다. 학폭이나 생활지도 사안, 일부 악성 민원 등 학교 내 갈등 사안을 전담할 수 있는 인력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현재로서는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는 것보다 교장-교감을 투톱으로 하는 시스템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교장과 교감은 수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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