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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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들이 물었다.
"아빠, 행복을 나누면 무엇이 되고 슬픔을 나누면 무엇이 될까요?"
세속 철학론에나 나올 법한 답변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닐 것 같아 조금 망설였더니, 아들이 큰 깨달음을 전해 드릴 테니 잘 기억하시라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행복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돼요."
모 사업에서 성공 신화를 일구고,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솔루션을 전하는 일을 한다는 어떤 유튜버의 말이라고 한다.
아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지난 학기 교무실 맞은편에 계시던 선생님이 친구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시면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앞으로는 동창이나 친한 지인들을 만나면 고민거리나 골치 아픈 개인사를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하셨다.
사람들을 믿고 그런 문제들에 얽힌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했더니 나중에 자신이 한 이야기가 엉뚱한 이야기로 각색되어 뜬소문처럼 떠돌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인간 관계의 어려움의 한 씁쓸한 단면이 그대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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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인용하는, 전후 일본의 정신의학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노다 마사아키가 진단한 현 일본의 사회 현실이 일본만의 것은 아닐 것 같다.
행복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나는 진실 철학론의 기본이자 인간 관계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데, 우리 현실은 세속 철학론은 고사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류의 차가운 정글 생존론으로 변모해 중학교 아이들에게조차 모종의 깨달음(?)을 주고 있으니 무어라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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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언제나 사건이나 지식만을 중시하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흐름이나 동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걸까? 자신의 감정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감정을 소통하는 것보다는, 사물의 성취나 귀결을 아는 것이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략)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집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를 둘러싼 문화가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받아들이고 느낄지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대다수 장년층과 노년층은 감정이 뻣뻣하게 굳어 타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열어놓고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대기업 관리직, 관료, 학자, 저널리스트 등 이른바 엘리트들은 결코 정신이 풍요로운 사람들이 아니다. 공감력이나 상상력이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마찬가지로 서민들도 오로지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기만 했다.
그들의 자녀인 청년들도 감정의 폭이 좁아졌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정보의 교류나 기껏해야 얼굴을 맞대는 물리적 교류 정도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 노다 마사아키(2023), 《전쟁과 죄책: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 또다른우주, 18~19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