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Aug 11. 2023

책을 여섯 권만 남기고 전부 없애야 한다면

조지 오웰의 글과 글쓰기에 대하여

1


글을 쓰는 데는 왕도가 없다.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최소한 한 번쯤은 만날 법한 문장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글쓰기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난다면 맥이 풀릴 것이다.


글쓰기 책에서 글쓰기의 왕도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유감스럽게 들리겠지만 글쓰기에 왕도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글쓰기의 왕도가 없다면서 글쓰기 책을 쓰고 있는 작가는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이다. 글쓰기에 왕도가 있을 리 없는데 자신이 소개하는 글쓰기 방법이 분명 왕도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2


글쓰기 책들에서 만나는 다양한 글쓰기 왕도론은 작문에 관한 유구한 전통 이론인 ‘삼다(三多)’, 곧 다독(多讀, 많이 읽기), 다작(多作, 많이 쓰기), 다상량(多商量, 많이 생각하기) 중 하나로 수렴되는 것 같다. 나는 이 중 다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독을 아무 책이나 무조건 많이 읽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절반만 맞는 말이다.


다양한 책을 두루 섭렵해 배경 지식(책에 담긴 지식과 정보)을 폭넓게 저장해 두고 있으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다만 이런 책 읽기만으로는 개성적인 자기 문체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한 사람의 문체는 문장이나 글로 드러나는데, 지식과 정보 자체는 문장이나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좋은 문장과 글이 담긴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문장이나 좋은 책에 대한 생각은 천차만별이 아닌가. 이때 고전 작품이 진가를 발휘해야 한다. 무지막지한 시간의 폭압을 견뎌냈다는 점 하나만으로 고전 작품은 읽을 가치와 이유가 충분하다.


3


나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김수영과 조지 오웰의 작품을 고전이라고 생각하고 즐겨 읽었다. 그중에서도 조지 오웰의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2010, 한겨레출판)와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2010, 한겨레출판)

 글쓰기에 흥미를 잃게 되거나, 상투적인 문장들 때문에 글쓰기의 재미와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될 때 힘을 주는 원천이다.


조지 오웰의 문장들은 힘이 있다. 그러한 힘의 근원은 두 가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첫째, 오웰은 어떤 어둡고 절망적이고 힘든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946년 11월 한 잡지에 게재된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는 1929년 파리 15구에 있는 악명 높은 ‘X병원’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에서 오웰은 20여분 동안 진행된 입원 수속 절차를 “통상적인 고문 코스”라고 표현했다. 그 뒤에는 “체념한 환자들의 무리가 색색의 보따리를 들고서 질문 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오웰은 예의 입원 수속을 위한 면담을 마칠 무렵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극심한 고열 때문에 이미 서 있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키가 껑충한 오웰(키가 190이 넘었다고 한다.)과 일군의 부랑아들 같은 환자 무리가 기진맥진한 채로 서 있는 풍경이 유쾌할 리 없는데, 오웰과 그 환자들 모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모든 표현들 정말 웃겼다.


둘째, 우리는 평이하고 단순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오웰의 짤막한 문장들을 읽으며 특수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보편적인 어떤 진실을, 사람들이 살아 가는 거대한 사회 현실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매섭게 쏘아보는 오웰의 눈빛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웰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땅속 300미터의 막장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캐는 모습을 지켜보고 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어 보자.


“우리가 영국 북부에서 차를 몰고 가며 도로 밑 수백 미터 지하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는 너무 쉽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당신의 차를 모는 것은 그 광부들인 것이다. 꽃에 뿌리가 필요하듯, 위의 볕 좋은 세상이 있으려면 그 아래 램프 빛 희미한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 - 48쪽


4


오웰의 말마따나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인지 모른다. 오웰은 책을 쓰는 일을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오웰의 그런 문장들을 읽으며 쓸 만한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을, 읽을 만한 글을 더 많이 찾아 읽으려는 욕망을 마음껏 떠올린다.


오웰은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만일 책을 여섯 권만 남기 나머지는 전부 없애야만 한다면 단연코 《걸리버 여행기》를 그중 하나로 꼽겠다고 말했다. 나라면 여섯 권 중 두 권을 《나는 왜 쓰는가》와 《위건 부두로 가는 길》로 채울 것이다.


그러니 오웰 선생, 파리 X병원에서 선생이 겪은 끔찍한 경험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며 웃은 나를 부디 용서하시오.

매거진의 이전글 그가 ‘괴물’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