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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13. 2023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1·2》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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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1906~1975)가 《전체주의의 기원 1·2》에서 다루는 역사 시기는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가 본격화한 19세기 후반부터 히틀러의 독일 나치즘과 스탈린의 소비에트 볼세비즘 체제가 완성된 제2차 세계대전 전후(20세기 중반)까지다. 나치즘과 볼세비즘이라는 전체주의의 시작과 끝에 서구 문명의 밑바닥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제국주의 체제와 양차 세계대전이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전체주의의 본질인 전면성과 총체성, 파괴적인 폭력성을 암시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책의 전체 구성은 전체주의가 출현하게 된 역사적인 경로를 따라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으로 제1권에 제1부 반유대주의와 제2부 제국주의를 함께 담고, 본편격에 해당하는 제3부 전체주의를 제2권에 나누어 실었다.


이 책의 원본은 1951년에 처음 나온 영문 초판이 477쪽,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보완해 1955년에 낸 독일어 증보판이 782쪽에 이를 정도로 대작이다. 책의 전체 내용을 구성하는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 전체주의 각각이 책 한 권 분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한국어 번역본 제1권의 첫머리에 제1판 서문 외에 제1~3부에 대당하는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 전체추의에 관한 서론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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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은밀한 메커니즘을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 이를 위해 “무모한 낙관주의에도 또 분별없는 절망에도 반대”(제1권, 34쪽)하고 “진보와 파멸이 동전의 양면이며, 신앙의 요소가 아니라 미신의 품목”(제1권, 34쪽)이라고 여기는 관점을 취했다. 기원이나 유래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 빠지기 쉬운 역사의 선형적인 발전, 진보성을 경계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아렌트는 과거의 일을 인간이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이러한 확신에 근거하여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아렌트가 바랐던 것은 유럽 중심의 서구 문명을 미증유의 파멸로 이끈 전체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제1권, 35쪽)고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제1권, 35쪽)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전체주의에 관한 역사책이라기보다 전체주의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정치철학서에 가깝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체주의의 역사적인 변천 과정과 그 뒤에 숨은 메커니즘을 탐색함으로써 인간의 비인간화를 통한 세계 통치라는 비현실적인 이상 추구를 목표로 하는 역사상 유례 없는 정치 체제의 본질을 밝힌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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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를 만나게 된다. 아렌트에 따르면 당시 세계 정치의 관점에서 유대인 문제와 반유대주의는 하찮은 문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반유대주의는 나치 운동과 독일 전체주의 체제의 조직 구조를 세우는 데 촉매제가 되었고, 곧장 미증유의 세계대전과 대량학살을 가져왔다. 식민지 팽창이라는 특징을 보인 유럽 제국주의는 전체주의 운동과 정권의 등장에 필요한 거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었다.


아렌트는 이 책에서 전체주의와 파시즘을 구별해서 설명하며, 우리가 상식적으로 전체주의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전제정치나 독재정치와도 구별한다. 전체주의는 단순한 폭정과도 다르다. 전체주의에는 그 모든 통치 형태의 부절적인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는 한편으로 그것들과 전혀 다른 본질적인 특징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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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정권의 국가 행정은 당 기관과 정부 기구의 이중 구조 아래에서 실행된다. 독일의 나치즘과 소련의 볼세비즘 전체주의 정권은 행정 구역과 관할 범위의 중복, 관직의 중복과 권위의 분할, 실질적인 권력과 표면상의 권력의 공존 등을 통해 행정 장치가 ‘무정형’의 양상을 띠면서 작동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같은 무정형의 체계는 “그 무정형 때문에 어떤 충격에도 끄떡없다.”(제2권, 174쪽) 이렇게 효율적인 통치 기술이 과거에 시도되지 않은 까닭은, 가령 관청의 중복이 관료들의 책임감과 전문적인 능력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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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 체제는 전체주의 정치의 두 번째 핵심적인 특징이다. 전체주의 정권의 비밀경찰은 문자 그대로의 무소불위 기관이다. “국가의 위에, 표면적인 권력의 간판 뒤에, 중복된 관청의 미로 한가운데, 모든 권력 이동의 배후에, 비능률의 혼돈 가운데에 국가의 권력 핵심, 능률적이며 유능한 비밀경찰의 부서들”(제2권, 191쪽)이 자리하면서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공포 정치와 테러, 도발과 밀고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민주정이나 전제정에도 비밀경찰이 있다. 이들과, 전체주의의 비밀경찰이 다른 것은 이들이 다루는 대상이 각각 ‘용의자’와 ‘객관적인 적’으로 구별된다는 데 있다. 용의자는 국가 전복과 같은 구체적인 범죄 혐의에 따라 정의된다. 그런데 ‘객관적인 적’은 정부 정책으로 정해진다. 아무런 범죄 혐의가 없는 무고한 이들이 정부 정책에 따라 하루아침에 비인간화의 존재로 전락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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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가 보기에 전체주의의 본질은 운동이다. 운동은 움직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주의는 안정화를 회피하고 끝없는 불안정을 추구한다.(이에 관한 기술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나치즘과 볼세비즘 체제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숙청과 테러, 강제수용소에서의 체계적인 학살 등 모든 문제적인 살인은 정권이 권력을 획득하고 안정화의 단계에 접어든 이후에 벌어졌다.


한편 운동은 (안정적인 정치가 아니라) 끝없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목표이다. 따라서 운동이 지속되고 그 자체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면 바로 눈 앞에 제거해야 할 적이나 운동을 방해하는 대상물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치 체제가 정책적으로 규정한 첫 번째 ‘객관적인 적’이 유대인이었다.


만약 나치의 전체주의 통치가 계속 이어져 모든 유대인을 절멸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면 그들은 제3국민이나 이등 독일인(*)에서 ‘객관적인 적’을 찾으려고 했다. 당연히 이러한 점은 스탈린 체제애도 그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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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세 번째 본질은 총체적 지배이다. 총체적 지배는 전체주의 세력이 권력 획득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완전히 축출하고 더는 반대파를 겁낼 필요가 없는 안정화 단계에서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모든 인간이 하나의 인간인 것처럼 조직”하는 데서 시작한다. 전체 유대인에 대한 법적 인격의 박탈, 정상적인 형벌 체계의 외부에 강제수용소를 설치하고 정상적인 법적 절차의 바깥에서 피수용자를 선발하는 방식 등이 총체적 지배의 구체적인 양상들이다.


아렌트의 전체주의론에 따르면 강제수용소의 대학살은 단지 ‘극악무도한 범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목표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 세계의 상식이나 공리를 없애며,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초감각’을 부여한다.


전체주의의 총체적 지배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전제적·독재적 통치가 아니라 “인간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시스템을 갖”(제2권, 248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은 범죄자(인간)이 아니라 무용한 물건(비인간)이기 때문에 마땅히 없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렌트는 이 최신종의 범죄를 “극단적인 악”(제2권, 252쪽)이라고 명명했다.


“이 시스템을 조작하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자신들 역시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래서 전체주의의 살인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살아 있는지 죽은 것인지 또는 이제까지 살아왔는지, 아니면 태어나지도 않았는지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한 존재들이다. 오늘날 (중략)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즉 우리가 지속적으로 우리의 세상을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렇게 되는 상황에 시체 공장과 망각의 구멍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제2권,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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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쪽을 훌쩍 넘는, 전체주의의 기원에 관한 아렌트의 논리적이고 치밀한 논증의 마지막 문단이 ‘시작’에 관한 문학적인 표현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 책이 간행될 즈음 현실 정치 세계의 전체주의는 스탈린의 죽음(1953년)과 함께 종말을 맞았다. 그런데 아렌트는 책의 말미에서 “이(전체주의) 정부는 이제부터 우리에게 하나의 잠재력으로 그리고 항존하는 위험으로 존재할 것”(제2권, 282쪽)이라면서도, 모든 종말이 새로운 시작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아렌트가 보기에 그것은 인간이 가진 최상의 능력이다. 아렌트는 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라고 하면서,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한다. “새로운 탄생이 이 시작을 보장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제2권, 283쪽) 책의 맨 마지막 두 문장이다. 전체주의가 말살하려고 했던 인간성의 본질인 자유와 인격의 맨 밑바닥에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있다.


나는 아렌트가 이 책을 쓰면서 간절히 기대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시작 능력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의 시작은, 전체주의가 이미 종말을 맞았으므로 우리 시대에 다시는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전체주의를 불러왔던 반정치, 비정치를 경계하고 타파하면서 민주주의를 늘 새롭게 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될 것이라 믿는다.



* 히틀러는 전쟁 기간 국민 건강 법안을 도입하려고 신중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 독일인을 대상으로 엑스 레이 검사를 실시하여 폐나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병자들의 목록을 만들고, 이들 가족이 일반 국민과 함께 있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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