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L. 샤이러의 《제3제국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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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좌지우지하기 힘든 지난날의 역사를 살피는 일은 무력감과 고통을 동반한다. 특정 시기에 관한 소망이나 분노가 투시된 가정과 상상의 결과물을 당대의 역사적인 사실과 대비하다 보면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회와 사람들에게 환멸의 시선을 갖지 않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의미와 교훈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 우리에게 고통과 환멸을 준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함께한다. 때로(어쩌면 대부분) 결국은 그토록 애쓴 노력이 무색하게 또 다시 지긋지긋한 환멸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이 인간 세상의 숙명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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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L. 샤이러의 책 《제3제국사》는 나치 독일이 패망한 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인 1960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전세계적으로 1000만 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이다. 초판 출간 1년 만에 양장본과 보급판이 각각 100만 부 이상 독자들에게 팔렸고,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축약판으로 연재된 글이 실려 1200만 명의 독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제3제국사》는 출간 후 6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절판된 적이 없다. 책에 실린 내용들이 함축하고 우리에게 전하는 역사적인 메시지와 그 가치를 굳이 재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독자 대중의 구미를 잡아 끄는 매력이 있음을 방증하는 사실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독일 제3제국의 역사에서 남다른 의미와 교훈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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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말 번역본으로 본문만 1953쪽에 달하는 거작이다. 나치 정권 12년의 시말과 제2차 세계대전의 굵직한 전쟁 장면 등을 담은 세밀한 묘사문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책을 읽어 나가는 데 도움거리가 되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모두 읽는 데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역사책을 펼치면서 기대하는 일련의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를, 이 책만큼 차가우면서(작가가 저널리스트이다.) 뜨거운(나치 치하에서 날카로운 관찰자로 지냈다.) 목소리로 전하는 책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의 권위를 실증하는 생생한 증거물로 1953쪽에 담긴 문장 하나하나를 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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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사》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까닭을 이런 과장적인 단언만으로 보증할 수는 없겠다. 이쯤에서 이 책에 약간이라도 호기심이 생긴 독자를 위해 이 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몇 가지를 짚어 보려고 한다.
이 책은 독일 나치 정권의 “고위정치, 외교 정책, 군사적 사건에 편중된 ‘위로부터의 통사’”(1970쪽)이다. 그런데 실제 문장들이 나치 최상층부의 진술과 메모, 이들이 관여한 공식적인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구체성과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치 수뇌부가 바로 곁에서 진술하는 듯한 장면 묘사 덕분에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차원에 걸치기 마련인 거시사 서술의 범위 문제나 추상적인 문장 표현의 한계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예상과 다르게 나치 정권과 그 수뇌부들은 직접 메모하거나 기록하고 공식적인 기록물을 남기는 데 상당한 성실성(!)을 보여주었다. 개인(육군참모총장 프란츠 할더, 선전부장관 요제프 괴벨스, 독일국방군 작전참모장 알프레트 요들) 일기, 극비 담화, 회의록, 서한, 나치 지도부의 도청 기록, 각 군 사령부의 일지와 제3제국 및 연합국 기관들의 문서고에 쌓인 산더미 같은 서류들이 샤이러의 손끝에서 분석, 정리되어 방대한 책 곳곳에 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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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보다 더 극적이었던 나치 정권의 부침 과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전체 역사가 작가의 직접적인 관찰과 공식적·비공식적인 문서 자료,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 등을 통해 실감 나게 묘사되었다. 히틀러를 위시한 표리부동한 나치 정권 수뇌부의 음모, 배신, 비밀 회동, 거짓 선전과 선동 등 구역질 나는 파노라마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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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그 음흉한 욕망과 파멸적인 과대망상을 흑막 뒤에 감춘 (부정적인 의미의) 권력 정치가 어떻게 인류 문명의 중심지를 자처하는 유럽 대륙의 한복판에서 부상했는지, 그리하여 인류 전체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오점을 안겨 주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도 특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가 온갖 불법과 폭력과 거짓을 동원하여 독일과 유럽 전체를 광기와 파멸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기까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권력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으려고 인고(?)의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뮌헨 맥주홀 폭동이 실패한 뒤 감옥에 갇힌 히틀러는 나치 심복 중 하나에게 새로운 권력 획득 전술을 이렇게 설명한다.
“앞으로 활동을 재개한다면 새로운 정책을 추구할 필요가 있네. 무장 쿠데타로 권력을 획득하려 애쓰지 말고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가톨릭이나 마르크스주의의 대표들에 맞서 제국의회에 들어가야 해. 설령 그들을 투표로 이기는 길이 총격으로 이기는 길보다 더 오래 걸릴지라도, 적어도 그 결과는 바로 그들의 헌법에 의해 보장될 거야. 적법한 과정은 하나같이 더디지. (중략) 조만간 우리는 과반수를 얻을 테고, 그러고 나면 독일을 얻을 걸세.” 란츠베르크에서 출옥하기 무섭게 히틀러는 바이에른 총리에게 나치당은 앞으로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확약했다. (217쪽, 밑줄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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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무리는 폭력과 린치를 일삼는 ‘거리의 갱단’이었다. 그러나 적법 절차를 거쳐 권력을 획득하자 그들은 독일의 족쇄가 된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해 군사 강국으로 재도약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독일 국민은 이에 발맞춰 전체주의 독재자가 요구하는 것들, “개인의 자유의 상실, 스파르타식 식사, 고된 노동”(412쪽)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했다.
히틀러는 제2공화국(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 힌덴부르크 사후 자신에게 대통령직 승계 여부를 묻기 위해 실시한 국민투표를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공식적인 ‘인증’을 받았다. 전체 국민 95퍼센트가 참여한 그 투표에서 90퍼센트에 해당하는 3800만 명이 히틀러의 권력 탈취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독일 전역에서 광포한 나치화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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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태생의 전 육군 상병 출신 총통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애인이었다가 막 정식 부인이 된 에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으로 자결했다. 독일 제3제국은 자신의 창건자보다 7일을 더 살았다. 1933년 3월 24일부터 1945년 5월 8일까지 12년 4개월 8일 동안 독일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전체주의 공포 독재 국가의 길을 걸었고, 1939년부터 5년 8개월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600만 명에서 최대 1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유럽 전역의 전장과 도시와 마을, 가스실과 숲 속 구덩이에서 살육을 당했다.
78년이 지났다. 나치 유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준동하고, 이민자를 비롯한 타민족을 향한 혐오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처럼 국제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국지적인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제3차 세계대전의 전운을 감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78년 전에 끝난 암흑 시대의 후과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사실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제3제국사》는 그 이유를 아주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해 준다.
* 윌리엄 L. 샤이러 씀, 이재만 옮김(1960; 2023), 《제3제국사: 히틀러의 탄생부터 나치 독일의 패망까지》(1~4), 책과함께, 7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