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쟁을 몰라요
예바 스칼레츠카의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2023, 생각의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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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바 스칼레츠카에게
안녕하세요, 예바 학생. 나는 대한민국의 어느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살아가는 정은균이라고 합니다.
지난 학기 초부터 나는 우리 학교 1학년 학생 2명과 함께 예바 학생이 쓴 책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예바 스칼레츠카, 2023, 생각의힘)를 읽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방과후에 만나 1시간씩(45분 수업 기준)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각자가 읽어 온 대목에서 인상적인 구절과 그 이유를 함께 주고받고, 새로 몇 쪽을 번갈아가며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예바의 힘든 처지와 주변 사람들의 아픈 현실에 공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지난주에 책 읽기 활동을 끝내고, 마지막 독후 활동으로 이렇게 ‘작가에게 편지 쓰기’를 합니다. 그사이 학생 한 명이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떨어져 나갔습니다. 남은 사람은 다른 학생 한 명과 나입니다.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만 예바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위로나 격려가 될 만한 메시지를 전하면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루하루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절로 일어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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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바에게는 미안합니다만 나는 ‘행운아’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인 1950년에 한국전쟁(Korean War)이 터져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고통 속에 죽어갔습니다. 500만 명 이상이 죽었고, 1000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3년간 이어진 전쟁은 지금 ‘정전(휴전)’ 상태입니다. 나는 올해 53살입니다. 다행히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에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전쟁의 폭력으로 고통을 겪을 일은 제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는 언제 어디서든 조그만 충돌만으로도 전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위험한 분쟁 지역에 속합니다. 나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상에 문득 몸서리를 치곤 합니다. 그래서 시시각각 급변하는 전쟁 상황 아래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예바의 모습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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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이 되면 국가 간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전쟁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의롭지 않으며, ‘정당하고 불가피한 전쟁’이라는 표현은 모순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이해합니다만, 전쟁은 전쟁을 겪어 본 이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절대로 전쟁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쟁이 진실로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전쟁에 빠져듭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군대)이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살상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인 한 윤리적이거나 정당한 전쟁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전쟁의 윤리성이나 정당성 문제를 한낱 기술의 문제로 축소하여 이해하거나 해소할 수도 없습니다. 첨단 무기의 발달로 정밀 타격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전쟁이 나면 민간인 사망이나 민간 시설의 폭격 피해를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 범죄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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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바 학생이 책 본문 마지막에 쓴 의지에 넘치는 구절(250쪽; “우린 아직 아이들이라고, 그러므로 우린 평화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과 ‘감사의 말’ 끄트머리에 쓴 구절(266쪽; “모든 게 괜찮아질 거다. 난 그렇게 믿는다!”))을 읽으면서 감상적인 위로의 말을 편지에 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그래야 한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 한 예바와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밝게 빛날 것이라 믿습니다. 정전 상태인 우리나라 역시 종전을 넘어 통일 국가가 되는 날이 꼭 올 것입니다. 함께 힘 내었으면 합니다. 안녕히.
2023년 9월 25일 16시 14분, 먼 한국에서, 정은균 씀.
* 이 책은 12살 우크라이나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일기를 묶은 것이다.
* 예바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하르키우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지금은 할머니와 아일랜드 더블린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