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호의에 대하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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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가을, 퇴임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하 ‘문 전 권한대행’)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나는 그가 우리 사회 최상층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판사이면서 청빈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평소 꾸준히 공부하면서 책을 챙겨 읽어 왔다는 말을 여러 경로로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무척 컸다.
책을 곧장 챙겨 읽으려다가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 그러지 못하였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새해 들어서자마자 단골 서점에서 책을 구해 와 읽었다. 문 전 권한대행은 스스로 이 책을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애썼던 어느 판사의 기록”(7쪽 ‘여는 말’)이라고 규정했다. 꾸미지 않은 평이한 문장들 사이사이에 평균인이 되고자 노력한 문 전 권한대행의 평범(하기에 고유하고 소중)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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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권한대행은 자칭 ‘평균인’이다. 말로만 그럴 뿐 아니라 현실에서의 삶 또한 그렇게 되려고 했다.
언젠가 문 전 권한대행이 2019년 4월 9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인사청문회장에 참석해 국회의원들과 질의 응답을 주고받은 영상을 보았다. 당시 문 전 권한대행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6억여 원(부친 재산 포함, 본인 재산은 4억여 원이었다고 함.)의 재산 신고를 했다고 한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헌법재판관의 평균 재산(약 20억 원)을 거론하며 27년 간의 법관 생활 경력치고는 4억여 원이 너무 적지 않으냐고 묻자 문 전 권한대행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전 권한대행은 당시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이 3억 원 남짓 되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평균 재산을 좀 넘어선 것 같아 제가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정도라면 ‘평균인의 삶’에 관한 다짐의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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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호의에 대하여: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는 문 전 권한대행의 첫 책이다. 문 전 권한대행은 “평생 책 한 권 내는 것을 꿈꾸었”(7쪽)다고 한다. ‘여는 말’에 풀어 놓은 글쓴이의 생각을 이리저리 조금 더 헤아려 보면 앞으로 그가 또 책을 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문 전 권한대행의 첫 책이며, 그가 평생 펴내기를 바란 책 권 수가 한 권이라는 사실 모두가 그의 우직하고 한결같은 성실함을 보여주는 증표처럼 다가온다.
책에 실린 글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쉬우며(?) 우리 자신에게 보람을 가져다 주는 일인지 깨닫게 해 준다. 그는 삶의 단편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차원에서 글을 써서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그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쌓인 글들 중 일상의 생각들(‘1. 일상은 소중하다’), 독서 일기(‘2. 일독을 권한다’) 사법부 게시판에 올린 사법 현안에 관한 것(‘3. 사회에 바란다’) 등을 엄선해 묶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교훈을 떠올려도 되지 않을까. 꾸준히 일기를 쓰듯 일상을 기록하고, 책을 읽고 나서 짧게라도 독후감을 남기면 누구든 책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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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생계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업이 우리 각자의 삶의 철학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라는 사실이다. 가령 나는 공무원 집단이 자신들의 연봉을 가장 우선시하고 교사들이 급여 인상폭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미칠 유무형의 영향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문 전 권한대행이 2007년 2월 14일 쓴 짤막한 글은 그가 자신의 직업인 판사직에 대하여 어떤 철학적 관점을 가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신은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어떤 생각으로 그 일에 임하고 있는가?
판사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멀쩡한 사람을 죽일 수는 있다. 선고 전날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산책한다. 내일의 판결을 머리로 그려보고, 결론에 자신 있는지를 검증한다. (47쪽, ‘판사의 일’)
◯ 문형배(2025), 《호의에 대하여: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김영사, 18,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