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보다 오래 산, 한 시대의 아이콘

공자님, 이것이 교육입니까? (1)

by 정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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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에 죽었다. 72년을 살다 갔다. 공자는 칠순에 접어들면서 큰 불행을 겪었다. 공자는 19살에 기관씨(丌官氏)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공리(孔鯉)라는 이름의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이 아들이 공자가 70살이었을 때 공자 곁을 떠났다. 안회(顔回)라는 이름의, 공자가 가장 아꼈다고 알려진 수제자는 41살에 죽었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아들이나 수제자가 먼저 죽으면 남은 생을 쉽게 이어가기 힘들 것 같다. 공자는 피붙이인 아들 공리는 물론이고 안회를 아들 버금가는 존재로 여겼다. 《논어》에는 안회가 공자를 아버지처럼 여겼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공리와 안회가 죽을 무렵 공자 나이는 이미 70살을 넘었다.


공리와 안회가 그렇게 먼저 일찍 죽지 않았다면 공자의 임종 연령은 훨씬 더 늦춰짐으로써 명실상부한 장수의 대명사처럼 역사에 기록됐을지 모른다. 8세기경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는 한 시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사람이 70살을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이다. 두보가 살았던 시대보다 천삼백 년 전이었던 공자 시대에는 칠순 나이가 더욱 드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공자는 그 누구보다 장수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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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보아도 무방한데, 이는 그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하는 전무후무한 위업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공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춘추시대(春秋時代)였다. 춘추시대는 고대 중국의 삼대(三代) 중 마지막 국가였던 주나라가 서쪽 호경(鎬京)에서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한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까지를 가리킨다. 그래서 춘추시대 이전의 주나라는 서주로, 춘추시대 시기의 주나라는 동주로 구별해 부른다.


춘추는 공자가 자신의 고국 노나라의 242년(기원전 722년~기원전 481년) 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살았던 특정한 시대를 가리키는 명칭이 그 사람 자신이 쓴 책에서 따온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자는 역사의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공자 자신은 이런 평가나 의미 부여에 대하여 좋아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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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동시대 어느 누구보다 장수한 공자, 그 자신이 살았던 시대가 그 자신이 쓴 책의 제목으로 규정되는 역사의 행운을 거머쥔 공자라는 등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기술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공자를 ‘무관의 제왕’, 곧 왕의 상징인 면류관을 쓰지 않은 제왕이라고 칭했다. 당나라 현종은 공자에게 고래로부터 이어온 문선왕(文宣王)이라는 존칭어에 기대어 문선제(文宣帝)라는 시호를 내렸다. 공자는 유교의 창시자로서 만고의 성인이었다. 이때 공자는 예수나 석가모니와 같은 반열에 있는 신적인 존재로 최고의 존경을 받았다. 철학자, 사상가, 동양 정신의 효시 등 공자를 수식하는 말을 우리는 얼마든지 더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공자가 이런 호칭들을 그닥 탐탁지 않게 여길 것 같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자는 왕이 아니었고, 신은 더욱 아니었으며, 무슨 철학이니 사상을 들먹인 사람도 아니었다. 공자가 살아 있다면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은, 내가 보기에 인간 공자를 적실하게 드러내는 호칭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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