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 이것이 교육입니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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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표준적인 공자상은 중국 당나라 시대(618~907)에 활동한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상 ‘선사공자행교상(先師孔子行敎像)’(아래 ‘행교상’)이 손꼽힌다고 한다. 중국에 있는 공자 사당에 있는 석각화의 원본이 바로 이 행교상이다.
‘선사(先師)’는 돌아가신 스승, 또는 옛날의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풀이되고, ‘행교’는 가르침을 행한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오도자가 그린 공자상의 제목 ‘선사공자행교상(先師孔子行敎像)’은 “옛날의 뛰어난 스승이었던 공자가 가르침을 행하는 모습을 그림 그림.”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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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자는 중국 당나라의 화성(畫聖)으로, 당대(唐代) 최고의 불화(佛畫) 및 산수화에 정통한 화가라고 알려져 있다. 정확한 생몰 연대는 전해지지 않지만 동양 회화에 큰 영향을 끼친 회화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는 화가였던 그가 공자를 좋아했는지, 공자가 행한 가르침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하여 알 도리가 없다. 자신의 시대에서 600여 년 전쯤 시기를 살다 간 한 인물의 전신 초상화를 그리고 제목에 ‘스승’이라는 말을 집어 넣은 까닭 또한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가 그림의 주인공을 가르침을 행하는 한 명의 스승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천천히 살펴보자. 그림의 중앙부 전면은 만년의 나이에 이르렀을 법한 공자가 팔을 절반 정도 구부리고 오른손을 왼손 위에 포개 놓은 채 왼쪽을 비스듬히 바라보고 서 있는 전신상이 차지하고 있다. 그림의 제목에 해당하는 글자 7개는 전신상 상단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다. 제목과 중앙부 전신상 사이 우측 중단에 흔히 화상찬(畵像讚)이라고 부르는, 화상에 붙이는 찬사 글 한 편이 2행 4구 16자 분량으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덕은 천지와 짝하고 도는 고금에 으뜸이로다. 육경을 산삭하고 찬술하여 법[모범]을 만세에 드리웠노라.
德侔天地 道冠古今. 刪述六經 垂憲萬世.
전반 2구는 공자의 덕과 도를, 후반 2구는 공자를 대표하는 업적과 그 의미를 표현하였다. 공자는 도와 덕이 바로 이러저러하다고 명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고, 군자는 덕을 좋아하고 소인은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을 생각한다고 말한 사실을 보면, 도와 덕이 공자가 추구한 가치의 핵심이었음을 알게 된다.
후반부의 육경 산삭과 찬술 등에 관한 내용은 공자의 만년 행적과 그 의의를 기술한 것으로 이해된다. 육경은 《시전》, 《서전》, 《예기》, 《악경》, 《주역》, 《춘추》 등이다. 《악경》은 이름으로만 전한다. 공자가 이 책들을 모두 직접 썼는지, 또는 이미 존재하는 글들을 모은 뒤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편집한 방식으로 지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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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공자가 말년에 벼슬에 대한 뜻을 모두 접고 전적 정리와 집필에 매진한 것처럼 《사기》에 썼는데, 《서전》, 《예기》는 서(敍)하고 《시》는 산정(刪定)하고 《예기》는 정(定)했다고 표현하였다. 《논어》에는 공자가 전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화상찬에 있는 육경의 산삭과 찬술이라는 진술을 기존의 기록물이나 글을 읽고 편집하면서 행한 공부나 연구의 일환으로 이해한다. 그것이 제목에 있는 행교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독법일 것이다.
화상찬의 저자는 공자의 정체성을 스승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그 조건을 천지에 버금가는 품성(도덕)이라는 내면적 측면과 저술 활동이라는 외면적 측면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공자(孔子)라는 호칭어의 ‘子’ 또한 제자들이 스승이나 선생님을 존칭하여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공자는 선생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