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원업적평가의 문제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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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사 48만여 명을 평가하는 제도가 올해 새로 마련되었다. 이른바 ‘교원업적평가’다. 크게 ‘근무성적평정(근평)’과 ‘다면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 평가 기제는 세 가지였다. ‘근평’, ‘교원능력평가’, ‘성과급제’가 그것이다. 새로운 평가 시스템은 이들을 통합해 ‘근평’과 ‘다면평가’로 구성되는 교원업적평가와, 기존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교원능력펵가로 이원화한 체제로 구성되었다.
교원업적평가에서 근평이 차지하는 비중은 60퍼센트다. 교장이 40퍼센트, 교감이 20퍼센트를 맡는다. 정성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기존 근평에서처럼 교장과 교감 등 학교관리자의 영향력이 여전히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면평가 비중은 40퍼센트다. 다면평가관리위원회(다면평가위)가 담당한다. 정성평가 42퍼센트, 정량평가 8퍼센트다. 다면평가위에는 외부위원이 50퍼센트 이상 들어가야 한다. 외부위원은 교장이 위촉하는 전문위원이나 학부모위원들로 구성된다. 교사들이 학교 바깥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는 시스템이다.
학교성과급제와 개인성과급제로 나뉘어 있던 기존 성과급제는 학교성과급제를 폐지하면서 개인성과급 하나로 일원화하였다. 다면평가 결과를 100퍼센트 반영해 결정한다. 성과급제에 활용되는 다면평가는 정성평가 20퍼센트, 정량평가 80퍼센트로 구성된다.
새로운 교원평가는 법률적 강제력이 더 강해졌다. 기존 교원평가제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교육부의 <연수에 관한 규정>과, 이를 바탕으로 각 시도교육청이 마련한 지침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번 제도는 <교원능력개발평가훈령>(‘<훈령>’)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교원평가를 규정한 첫 번째 ‘정식’ 법률 규정이라 할 수 있다. <훈령> 제17조에는 교원이 교원평가 거부・방해・해태 시 징계에 회부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담고 있다. 교육감이 임명하는 평가관리위원회가 심의를 통하여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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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가 기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나는 새로 만들어진 평가제도가 ‘말 잘 듣는 교사 만들기 제도’, 또는 ‘말 안 듣는 교사 길들이기 제도’라고 생각한다. 도덕적이고 자율적인 인간 형성과 무관하고, 승진이나 돈(성과급) 같은 외재적 동기가 아니라 자발성에 기반하면서 자기 만족과 보람에 연결되는 내재적 동기를 자극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당근과 채찍 제도다.
그것이 이끌고 길러내는 교사상은 민주주의적이지지 못하다. 권위 맹종형 인간 유형에 가까울 것이다. 국가와 정부의 명령에 맹종하는 애국심과 충성심 넘치는 교사, 교장의 지시와 명령에 토 하나 달지 않고 순응하는 교사,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자부심과 자존감과 자신감을 버리고 아이들과 학부모 눈치를 보는 교사를 양산하는 제도로 전락할 것이다. 정부와 교장을 향해 ‘아니오’를 말하고, ‘다른 것’을 강조하는 ‘불량하고 불온한’ 교사들은 무능한 저성과자 압박에 밀려 징계와 해고의 족쇄를 찰 것이다.
시계를 7개월 전인 2016년 1월 26일로 돌려보자. 이날 교육부는 <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공무원 보수나 임용과 승진이 ‘직무성과’를 중심으로 전환하고, ‘공직가치’ 조항을 신설하며, 성과평가미흡자의 일정 기간 직무성과와 역량을 심사해 직위해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 ‘공무’의 성과를 무엇으로 평가할지 알 수 없지만 저성과 공무원을 ‘성과 평가’ 결과에 따라 옥죌 수 있는 법률적 수단을 갖추었다. 평생직종이라는 공무원과 교원들에게 합법적인 해고의 길이 열린 것이다.
‘공직가치’ 조항들을 통해 국가(정부)에 대한 ‘충성도’와 ‘복종도’를 높임으로써 공무원의 (시민이 아닌) 국가 종속성을 강화했다. 입법예고 기간 중 ‘애국심, 민주성, 청렴성, 도덕성, 책임성, 투명성, 공정성, 공익성, 다양성’ 등 9개 항목이었던 공직가치가 국무회의 통과 개정안에서는 ‘애국심, 책임성, 청렴성’ 등 3개 항목으로 축소된 것이 방증이다. 다양성과 공익성과 민주성 등 민주주의 가치와 원칙에 부합하는 항목들은 고스란히 빠졌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지시였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것을 애국의 한 증표로 보는 독특한 애국관의 소유자다.
이번 평가 기제에서는 다면평가위 구성이 교사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교감이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학교장이 위촉하는 학부모 위원과 전문가 위원이 들어간다. 전체적으로 교장, 교감 등 관리자의 의도와 학교 외부의 입김에 따라 평가 기조와 방향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정성평가나 정량평가의 활용 방식이 교묘하다. 승진에 활용되는 다면평가 결과 비중 40퍼센트의 구성 요소 비중을 눈여겨보자. 정성평가 지표가 32퍼센트, 정량평가 지표가 8퍼센트다. 교육부 예시안의 정성평가 지표를 보면 크게 ‘근무수행태도’와 ‘근무실적 및 근무수행능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교육공무원으로서의 태도’가, 후자는 ‘학습지도’, ‘생활지도’, ‘전문성 개발’, ‘담당업무’ 등이 평가요소다.
이들 평가요소를 중심으로 교장의 권력 구도 아래 있는 다면평가위원회가 평가한다.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들이 교장 눈치를 더 강하게 봐야 하는 구조다. ‘주관’에 따른 정성평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아질 경우 학교가 불신과 반목과 분열에 빠지게 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성과급지급에 활용되는 다면평가는 반대다. 정성평가가 20퍼센트, 정량평가가 80퍼센트다. 정량평가 지표 예시안을 보면 ‘학습지도’, ‘생활지도’, ‘전문성개발’, ‘담당업무’ 등의 평가영역이 있다. ‘주당 수업시수’, ‘수업공개 횟수’, ‘교내외 수업컨설팅 횟수’, ‘교내외 수업동아리 활동 참여 실적’, ‘학생・학부모 상담 실적’, ‘생활지도 곤란도’, ‘학년 곤란도’, ‘공연 및 전시회 지도’, ‘학생경연대회 지도’, ‘업무 곤란도’, ‘업무 추진’ 등이 평가문항으로 들어있다.
실적 포장과 부풀리기를 위한 전시적이고 형식적인 업무 처리 방식이 늘어날 것이다. 정성평가나 정량평가 근거 자료로 활용한다는 목적 아래 학습지도안이나 교과서, 교무수첩, 기타 학습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게 하거나 검열할 가능성도 있다.
교원평가는 법률적 정당성이 약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행정은 법치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주권자 국민이 정당성을 부여한 국회에서 만든 법률에 따라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 법치 행정이 가져야 하는 법률 우위의 원칙(모든 행정이 법률에 위반되지 않아야 함)과 법률 유보의 원칙(행정권 발동에는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함) 들이 그것이다. 교육정책의 민주성이 확보되는 길이다.
새로운 평가 기제는 훈령에 따라 실시된다. 인터넷 <법률 용어 사전>에 따르면, 훈령은 상급 행정기관이 하급 행정기관의 권한행사를 지휘하기 위하여 발하는 명령이다. 하급관청을 구속함으로써 그 지휘에 따라 활동케 하는 구속력이 있을 따름이어서 일반 사인에 대해서는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법규명령(법규의 성질을 가지는 명령)이 아니라 행정명령(법규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 명령)이라는 점, 행정의 예방적 감독수단의 성격을 갖는다는 풀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육 당국이 징계 운운하면서 법률적 강제력을 말하고 있지만 정식 법률(상위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법률적 정당성이 약하다.
가령 정부는 <훈령> 제17조에 “평가 및 맞춤형연수 등을 고의로 거부・방해・해태하는 교원에 대해서는 시도교육청 평가관리위원회의 심의를 통하여 징계 등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에 대한 법률적 다툼 여지가 있는지와 관련하여 전교조가 민변에 질의를 했다. 민변은 “교원평가 훈령 외의 어떤 법률에도 ‘교원의 평가 참여 의무’가 명시적으로 규정된 바 없으므로, ‘교원의 평가 참여 의무’가 ‘직무상의 의무’인지 여부에 관하여는 다툼의 소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의견을 냈다. 상위법 없이 강행되는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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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업적평가제가 바라는 학교교육은 어떤 것일까. 이상적인 교사상은 어떤 모습일까. ‘제3회 교사라는 전문 직업에 관한 국제회의’(2013년 3월 13~14일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됨)에서 교원평가와 전문성 표준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아래 관련 내용은 국제교원노조연맹보고서(2015), <교사의 전문성, 어떻게 만들어지나>, 살림터 참조] 이 국제회의에서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1. 정책 수립 담당자는 교사의 자질, 교사라는 전문직,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가?
2. 교사의 자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어떤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3. 교원평가가 학교의 개선과 교사의 자기 효능감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교원평가는 교수학습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자기 효능감이라는 말이 있다. 교사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거부하는 입장이다. 교사들의 자존감, 자신감, 지도력 등을 중시한다. <교사의 전문성, 어떻게 만들어지나>를 옮긴 김석규 충북 괴산북종 교사는 2011년 열린 최초의 ‘교사에 관한 회의’에서 국제교원노조연맹이 교사의 자기 효능감과 지도력을 중요한 영역으로 제시한 것이 이런 입장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교육심리학자인 김아영도 교사 전문성의 핵심 요인으로 교사 효능감을 들었다고 한다. 기능이나 지식보다 열정과 신념과 자신감을 강조한다는 것.
존 뱅스와 데이비드 프로스트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역시 전 세계 교사와 교원노조 간부들을 인터뷰해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교사의 목소리와 영향력,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을 높여주는 전략과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위의 책 참조) 이들은 교사들이 자기 효능감에 주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효과를, OECD가 실시한 교수학습에 관한 국제조사연구(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TALIS)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교사들이 높은 수준의 자기 효능감을 가지고 있을 때 자기가 하는 일에서 더 많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기의 활동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더 많은 노력을 집중하고 더 오랫동안 지속한다. 따라서 교사의 자기 효능감은 학생의 학습과 학습 동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학생의 학습 동기가 없고 동기 부여가 어렵다고 여겨질 때조차도 그렇다. (중략) 대부분의 연구에서 교사의 자기 효능감과 학생의 인지 능력 발휘, 예를 들면 핵심 과목에서 성취도 또는 수행 능력과 기능 사이에 긍정적인 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 국제교원노조연맹보고서(2015), 위의 책, 29쪽에서 재인용함.
뱅스와 프로스트에 따르면 자기 효능감은 주체적 활동력(agency)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활동력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인간의 기본 능력이다. 프로스트를 이를 “‘자기 스스로 정한 목표와 목적을 자신이 알고 있는 전략적 행위를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우리의 역량”으로 정의한다. 역량이므로 경험에 따라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고 한다.
사회가 교사와 같은 전문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것(활동력)은 특별히 중요하다. 판단을 하고, 일련의 원칙에 따라 일하고, 주도권을 발휘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동료와 이해 당사자들에게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등의 능력은 주체적 활동력을 가진 인간으로서 얼마나 효율성 있게 활동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 국제교원노조연맹보고서(2015), 위의 책,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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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만족 요인’이라는 개념은 2002년 미국에서 나온 <공공정책 연구 보고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쓰였다고 한다. 교사들이 전문가로서 충족감을 느끼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추출해내기 위해서였다. 이 보고에서는 전문 직업에서 나타나는 소진 현상을, 그 직업의 긍정적인 요소를 키움으로써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학생과 만나는 교실에서의 활동을 핵심으로 하고, 교실 수업에 대한 결정 권한과 책임을 높이며, 교수학습 활동과 내용 모두에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기술을 적용할 권한과 자유를 갖는 것 등.
존 맥베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석좌교수는 교사의 만족 요인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이 아이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면 교사가 날마나 겪는 실망과 당황스러움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높은 수준의 개인적인 희생이 마음속의 만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공공정책 연구 보고서>에서 정리한 만족 요인과 불만족 요인은 다음과 같다.
새로 마련된 교원업적평가가 무엇을 가져올까. 만족요인과 불만족요인의 항목들을 찬찬히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교사의 전문성, 어떻게 만들어지나>(2015, 살림터) 표지다. 인터넷 포털 <다음> '책'(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4445892)에서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