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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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모의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SPE)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 1933~현재)는 명저 <루시퍼 이펙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적절한, 아니 부적절한 상황적 조건만 형성된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사실이 악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단지 그러한 지식은 악을 민주화하고, 그 악에 대한 비난을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이상 성격자나 독재자에게로만 돌리지 않고 보통의 행위자인 우리도 그 대상으로 삼도록 한다. SPE의 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교훈은 ‘상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황은 개인, 집단, 국가 지도자들의 행동적, 심적 활동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영향을 준다. 어떤 상황은 우리가 감히 할 것이라고는, 할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행동으로 우리를 이끌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 필립 짐바르도(2007), <루시퍼 이펙트>, 웅진지식하우스, 341쪽.
이렇게 추론할 수 있다. 시스템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사람들이 거부하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저항하는 ‘영웅’은 극소수다. 대다수는 시스템에 대해 맹종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나쁜 시스템을 떠받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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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이 진행한 전기 충격 실험 결과를 통해 이 문제를 알아보자.[아래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내용은 <권위에 대한 복종>(2009, 에코리브르)를 참조하였다.]
밀그램이 전기 충격 실험을 통해 주목한 것은 시스템 속의 사람들이 권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도덕적 명령에 직면한 상황에서 권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실험은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로 명명되었다. 밀그램은 인구 3만 명인 뉴헤이번 지역에 500명의 실험대상자(피험자)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냈다. 우체국 직원, 고교 교사, 회사원, 기술자,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 종사자들이 지원했다. 직업별로 기술자 및 단순 노동자 40퍼센트, 사무직 40퍼센트, 전문직 20퍼센트로 구성한 뒤 각 직업군마다 20대, 30대, 40대를 20퍼센트, 40퍼센트, 40퍼센트씩 할당했다.
실험자(권위자)는 피험자들을 ‘선생’과 ‘학습자’로 나눈 뒤 이들에게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학습자는 실험실 방 안 의자에 양 팔이 묶인 채 앉혀진 뒤 손목에 전극봉이 부착되었다. 실험에서 단어 쌍 목록을 학습할 것이며, 대답이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안내받았다. 학습자는 일종의 ‘희생자’로서 연기자 구실을 했다. 그에게는 실제 전기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진짜 피험자는 선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었다. 실험 과정은 이렇다. 선생 역을 맡은 피험자가 의자에 묶인 학습자를 확인한다. 주 실험실로 들어가 전기충격기 앞에 앉는다. 전기충격기는 15볼트에서 450볼트까지 15볼트씩 증가하는 30개의 스위치가 가로로 배열되어 있는 구조다. 각 스위치에는 ‘약한 충격, 중간 충격, 강한 충격, 매우 강한 충격, 극심한 충격, 지극히 극심한 충격, 위험: 심각한 충격’ 등 충격 정도를 나타내는 문구가 붙어 있다. 마지막 스위치 두 개는 ‘XXX’로 표기되어 있다.
단어 학습과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피험자가 학습자에게 “파란 상자, 좋은 날씨, 야생 오리” 등과 같은 일련의 단어 쌍을 읽어준다. 이어 “파랑-하늘, 잉크, 상자, 램프”와 같이 한 단어 쌍의 첫 단어와 네 개의 낱말을 읽는다. 학습자는 선택지에 해당하는 네 개의 낱말 중 첫 번째 단어와 쌍을 이룬 낱말을 가려내 대답해야 한다.
피험자는 학습자가 바르게 답하면 곧장 다른 학습과제로 넘어갔다. 틀리게 답하면 가장 낮은 단계(15볼트)에서 시작해 다시 틀릴 때마다 30볼트, 45볼트 등으로 15볼트씩 강도를 높여 전기충격을 가했다. 밀그램은 항의하는 희생자(학생)에게 더 심한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실험자의 지시와 명령에 피험자(교사)가 어느 단계까지 따르고 어떤 상황에서 거부하는지를 중점적으로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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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개시 전 밀그램은 정신과 의사, 행동과학부 대학원생과 교수, 대학 2학년생, 중산층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험 결과를 예측해 보도록 했다. 그들은 피험자들 모두가 실험자의 지시와 명령을 거부할 것이라고 보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대부분의 피험자들이 10단계(희생자들이 처음으로 풀어달라고 명백히 요구하는 시점인 150볼트)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0단계(300볼트)는 4퍼센트, 가장 높은 단계(450볼트)는 1퍼센트 정도로 예측되었다.
실험 결과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65퍼센트의 피험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희생자를 보면서도 전기충격기의 마지막 단계인 450볼트까지 스위치를 눌렀다. 그들은 희생자가 고통스러워하고 풀어달라며 강하게 간청했는데도 실험자의 명령에 따랐다. 피험자가 실험자의 지시를 거부한 경우 중 가장 낮은 전압은 300볼트였는데, 이는 ‘극심한 충격’에 해당하는 20단계였다.
이 실험을 반복한 다른 여러 대학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연구의 주요 발견의 근간이고 또한 가장 긴급하게 설명해야 할 점은 권위의 명령에 끝까지 따르려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자발성이다. (중략) 희생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평범한 사람들은 의무감-피험자로서 의무에 대한 인식-때문이었지, 특별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교훈일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적대감 없이 자기 일을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어마어마한 파괴적 과정의 대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일의 파괴적 영향력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근본적인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요구받았을 때, 상대적으로 얼마 안 되는 사람만이 그 권위에 저항할 뿐이었다. - 스탠리 밀그램(2009), <권위에 대한 복종>, 에코리브르, 30~31쪽.
피험자들을 실험에 복종하게 만드는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밀그램은 첫 번째로 ‘구속 요인’을 들었다. 피험자의 공손함, 실험자를 돕겠다는 최초의 약속(‘공식적인 계약’으로도 볼 수 있다.)을 지키려는 소망, 그러한 약속 철회가 갖는 어색함 등이다.
피험자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순응적 변화도 있다. 이와 같은 순응은 피험자가 실험자와 관계를 유지하고, 실험상의 갈등으로 인한 긴장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밀그램에 따르면 이 모든 것들은 권위자가 무력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라고 지시할 때 복종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사고들이다.
밀그램은 피험자들이 보이는 순응적 사고가 그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느끼지 않게 하는 식의 심리적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합법적 권위자인 실험자가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여김으로써 자신들은 책임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사람들이 예속적인 지위에 놓이게 될 때 보이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밀그램이 보기에 책임감의 실종은 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가장 흔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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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강력하다.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다. 불법성 시비를 제외하면 시스템의 권위를 해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시스템을 두고 도덕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은 별로 많지 않다. 나쁜 시스템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양심을 눈멀게 하고 판단력을 그르치게 만드는 배경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시스템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일상적인 사고 범주를 규정하고 행동의 자장권을 구획짓는다. 시스템이 그 자체로서 권위의 대상이 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정의와 합리에 바탕을 둔, 진정으로 권위 있는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스탠리 밀그램의 책 <권위에 대한 복종>(2009, 에코리브르) 표지 사진이다. 포털 <다음(Daum)> '책'(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62630121)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