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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27. 2016

“학교를 열고 감옥을 닫아라”

경제주의 교육정책의 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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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공교육 시스템은 서구 근대 공교육 시스템에 기반한다. 서구의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재걸 대구교대 교수는 <한국 공교육의 이념>(2004)에서 평등, 국가주의(민족주의), 경제적 이윤 추구를 위한 순치된 노동력 양성 등의 세 가지 축으로 서구 공교육 시스템을 설명했다.[황희철 외 편저(2004), 공교육: 이념・제도・개혁》, 원미사. 참조]    


정재걸은 평등을 공교육의 이념으로, 국가주의와 순치된 노동력을 공교육의 현실로 구분했다. 나는 서구의 공교육 시스템과 관련하여 권리로서의 평등 교육이 실제 현실에서 국가주의와, 잘 길들여진 노동력 양성으로 구현되었다는 주장에 주목하고 싶다. 국가주의 문제부터 보자.


루소는 아동의 본성을 중시하면서 교육이 부모의 지식이나 편견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이 국가에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공리주의자 벤담 또한 국가를 ‘보편적 교육자(universal educator)’로 규정했다고 한다. 그는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교육에 개입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교육을 천부인권의 한 범주로 이해해 부모 자신이나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로 간주한 근대 교육의 이념과 상충되었다. 하지만 근대적인 국민경제 체제가 도입되고 국가간 경쟁 시대가 시작되면서 “부국강병을 위한 전 국민을 애국자로 만들기 위한 애국교육은 천부 인권으로서의 부모 교육권의 주장을 패퇴”(정재걸, 위의 글, 34쪽)시킨다.   

 

다음으로 경제적 측면. 미국의 진보적인 교육사회학자 보울스와 진티스(1980년대 비판적인 교육사회학 열풍을 가져온 학자들임. 이들은 학교교육이 민주주의 가치보다 자본주의 체제에 잘 따르는 순한 노동자를 길러내는 제도라고 보았음.)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근대 공교육의 형성은 노동자들의 투쟁보다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교육을 통해 순치된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이 모든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의무・무상교육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     


2    


서구의 근대 공교육 시스템은 형성 단계에서 평등의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국가주의와 경제 문제라는 현실 논리가 시스템을 이끄는 기준이 되었다. 정재걸이 “천박하고 값싼 대중교육(mass education)”으로 비판한 영국 공교육의 사례를 통해 평등이라는 근대 공교육의 이념이 어떻게 왜곡되고 퇴색되었는지 살펴보자.    


영국 공교육은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노동자 자녀들에 대한 자선사업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교회나 상류층 자선기관에서 일요일에 노동자 자녀들을 모아 읽기, 쓰기, 셈하기 등 기초 교육을 시켰다. 공장법 제정 이후 도덕교육과 종교교육 중심의 대중교육으로 정착되었다. 국가나 자본가들은 이런 학교들에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많은 학생을 적은 교사가 가르치는 대중교육기관으로 운영했다.     


학교의 등장과 강제교육(의무 공교육)은 부모에게 가계 수입의 감소를 의미했다. 학생들은 배울 의지나 의욕이 없었다. 교육학적인 방법론이 연구되고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학습동기를 유발하여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는 교육이론이 발전하였다. 정재걸은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그 결과를 인간(학생)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 행동주의 교육학의 발상이 값싼 대중교육의 산물에 있다고 보았다.    


로크의 노동학교안과 벤담의 감옥학교(파놉티콘, panopticon)은 천박한 대중교육으로서의 공교육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로크는 건강한 노동자 부부가 노동으로 부양할 수 있는 식구 수를 3세 이하 아동 2명으로 보고, 3세 이상 14세까지의 노동계급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격리해 노동학교에 수용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벤담은 중산층 자녀들을 위한 실과학교(christendom)와 별도로 감옥학교를 주창하였다. 감옥학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감시와 처벌 효과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학교를 열고 감옥을 닫아라”라는 구호가 상징하는 바다.    


로크의 노동학교나 벤담의 파놉티콘을 경찰교육(police education)이라고 하듯이, 국가의 이익은 학습자들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잠재적인 범법자이고 장차 사회불만세력으로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 자녀들을 일정 기간동안 감시가 용이한 곳에 감금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 정재걸(2004), 위의 글, 36쪽.    


3    


우리나라는 서구의 공교육 시스템을 구성했던 ‘이념’으로서의 ‘평등주의’와 ‘현실’로서의 ‘국가주의, 경제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의무교육 확대,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와 평준화 체제의 확장, 선발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대학입학제도에서 지역균형전형이나 저소득계층우선전형 등 차등적 보상 원칙을 적용한 대학입학전형제도로의 변화 등은 평등주의에 입각한 교육정책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큰 흐름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랬을까. 평등주의와 국가주의와 경제주의 각각 또는 상호간 비중의 다과와 중요도의 선후와 사회적 영향력의 강약이 크게 바뀐 듯하다. 이념 지위는 이미 국가주의와 경제주의가 차지한 것처럼 보인다. 평등주의는 교육의 장식품처럼 전락한 것 같다. 평등주의의 대표적인 기제인 고교 평준화 제도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도입된 고교 다양화 정책(‘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 자율학교 정책, 국제학교(국제중, 국제고) 정책 등으로 유명무실해져버린 현실이 뚜렷한 방증이다. 1~5군으로 나뉘는 아래 고교 위계 서열표를 보라.

                       


4    


경제주의가 이끄는 공교육 시스템은 현재진행형이다. 2016년 1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2016년 교육부 업무계획’에 대학구조조정, 사회맞춤형 학과, 일학습 병행제 등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사회가 원하는 인재 양성’이 핵심 기조라고 한다. 현 정부가 지난 3년간 추진해 온 ‘사회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의 종합판이라는 평가도 있다.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집중학기제가 있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1~2학년 4학기 중 한 학기를 선택해 진로・주제선택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제도다. 진로교육집중학기제는 고등학교 일반계고 1학년 대상으로 ‘진로와직업’ 교과 및 진로활동을 집중 편성하거나 일반교과와 연계해 진로수업을 하는 형태로 나뉘어 운영되는 제도다. 둘 다 진로 탐색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자유학기제는 지필고사가 없고(지필고사를 선택할 수는 있음.) 진로교육집중학기제는 지필고사가 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교육정책 중 비교적 호감도가 높다. ‘진로’와 ‘꿈’이 대세인 세상이 돼버렸다. 고민과 상담 1순위 같은 대접을 받는다. 분위기가 뜨겁다. 이들 문제가 해결되면 학생 교육과 장래 설계의 방해 요소들이 모두 해소될 것 같다.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집중학기제는 그런 지점들을 파고들었다.


문제가 없을까. 공교육의 평등주의 이념과 관련한 측면을 보자. 나는 진로교육집중학기제가 ‘일반계고’에 집중된 배경이나 이유가 예사로운 데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일반계고 아이들의 부족한 ‘진로 역량’을 길러주겠다는 ‘선의’의 정책 목표 이면에 이들 학교를, 이미 완벽한 직업교육과정이 펼쳐지고 있는 특성화고에서처럼 장래 말 잘 듣는 ‘순치된 노동자’를 길러내는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일반계고는 위의 고교 위계 서열표에서 4군을 차지한다. 1~3군이 향유하는 특권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계층 구조상 평범한 노동자계급 자녀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차별적이고 값싼 직업교육과 대중교육의 색깔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1~3군 학교에서 특권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사회 상층계급으로, 4~5군 학교에서 싸구려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하층계급으로 편입되는 구조로 해석할 수 있다. 학교와 학교교육이 학생들을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으로 미리 분화시키면서 사회적 차별을 고착화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것.    


다시 보울스와 진티스, 그리고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를 인용해 보자. 보울스와 진티스는 “교육의 조직은 직업의 구조 또는 노동시장의 구조에 대응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직업학교가 “학생들의 운명과 장래 활동이 미리 결정”돼 “사회적 차별을 영속”시킨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5    


나는 오늘날 초중고교를 지배하는 진로 교육, 진로 탐색, 자기 주도 학습, 자기 개발 역량 등의 말들이 공리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에 관련된다고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이들 관점 외에 아래의 전인교육적 관점 등에 관련된 내용은 이종재 외(2015), <교육정책 설계의 역사적 맥락>, 《교육정책론》, 학지사, 385~425쪽 참조.] 효율과 선택이 교육제도의 핵심 운영 원리가 된다. 민주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전인교육적 관점이 평등성을 원리로 하는 점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미래를 지향한다. 독립성과 역량(doing)을 강조한다. 교육은 ‘도구’가 되고, 능력에 따른 경쟁과 효율성이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한 공정성의 원리가 된다. 아이들은 ‘인적 자본(human

resource)’으로 간주된다. 결과가 어떠할까. 존 테일러 개토가 <학교의 배신>에서 서술한 내용으로 대답을 갈음하고 싶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절망의 시간을 선고받고, 있지도 않은 일을 하는 체 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면 아이들은 공격성을 잔뜩 품은 채, 그 일을 집으로 가져갑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슬퍼하고 절망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뿐, 사형 집행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랑도 없고, 독창성도 없고, 자기 집안이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꾸준한 성실함도 없는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입니다. (중략)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이들도 있지만, 상처받은 아이들은 그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그냥 할 일만 말해주세요.” 하고 내뱉듯이 말합니다. - 존 테일러 개토(2015), <학교의 배신>, 민들레.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존 테일러 개토의 책 <학교의 배신> 표지다. 포털 사이트 다음(Daum) '책'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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