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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30. 2016

어떤 동네북

1   

  

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이다. 2000년 3월 2일자로 교직에 들어섰다. 그 해 3월 중순께 전교조 가입 신청서를 썼다. 교직 이력과 전교조 조합원 경력이 거의 겹친다. 

 

전교조에 가입한 이유는 분명했다. 교사라는 전문직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다. 전교조가 강조하는, 보편・평등교육에 기반한 공교육의 원칙을 지키고 실천하고 싶었다. 학교민주주의를 위한 대의를 일관되게 견지해 온 전교조의 당당한 조합원이 되고 싶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시도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들이 ‘진짜’ 교육, 전교조의 이른바 ‘참교육’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줄 세우기를 통해 학생・학교를 위계 서열화하고, 경쟁 시스템을 강화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조장했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전교조 모토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전교조는 ‘척결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주장이 아니다. “전교조를 불법노조로 정리하라”. 2011년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한 말이다.

나는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박근혜 정부의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어 왔다고 본다. 2013년, 출범 27년 합법화 13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를 향해 느닷없이 내부 규약 시정 명령을 내렸다.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내용이 빌미였다.


규약을 바꾸면 해직 조합원을 조합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자주성과 연대를 핵심으로 하는 노조와 노동자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었다. 무리한, 그리하여 누가 보아도 전교조 죽이기 음모가 뒤에 숨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무리한 판단 근거는 1999년 개정 후 한 번도 손질된 적이 없는 <교원노조법>이었다.  독소조항이 가득했다. 조합원 자격을 현직교원으로 한정하고 있다.(제2조) 정치기본권을 제약한다.(제3조) 쟁의행위를 금지한다.(제8조)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한다.(제17조)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교원들의 노동기본권을 심대하게 해치는 것들이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손발을 묶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악법’이었다.    

 

2     


‘분열, 몰락, 사면초가’. 전교조 전 지도부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했다는 ‘교육노동운동 재편모임(재편모임)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언론들이 쏟아낸 말들이다. 전교조의 무시 못할 영향력(전교조는 <중앙일보>에서 2년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파워집단 영향력 순위에서 10위권 중반대를 차지해 오고 있다. 국정원과 비슷한 순위다.) 때문일까. 때를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날선 언어들이 어지럽다.

재편모임은 29일 성명을 통해 전교조가 대중성과 민주성, 진보성을 상실해 퇴했다고 비판했다. 복수노조 시대에 걸맞게 노동기본권 행사를 위해 새 교원노조를 결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은형 전교조 전 수석부위원장과 이용관 전 정책실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다고 한다. 100명으로 이루어졌다는 재편모임의 활동 방향은 정부의 법외노조화 작업에 대한 대응 시각을 통해 어느 정도 감지된다. 김은형 대표는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강경한 명분 중심의 활동 대신 합법화의 테두리에서 현장 교원이 가입할 수 있는 노조, 실제 교육정책을 놓고 교섭할 수 있는 노조를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한다.
     

원 전 국정원장이 전교조 정리 발언을 한 게 5년 전인 2011년이었다.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드라이브가 본격화한 시점은 2013년이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에는 일련의 치밀한 ‘기획 작업’이 있었다. 그런 정부에 ‘저항’하자는 것이 대다수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들의 뜻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재편모임은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와의 교섭을 언급했다. 교육철학과 방향과 기조가 상이해 보이는 현 정부가 정해 놓은 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겠다는 게다. 전교조가 대중성과 민주성과 진보성을 잃고 퇴행했다고 비판하면서 말이다.

이해하어렵다.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교육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현행 <교원노조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떤 대중적이고 민주적이며 진보적인 교육운동이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3     


전교조는 법외노조의 길을 걷고 있다.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 있지만 않았다. 교원(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정치중립 의무의 미명 아래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하는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합원 자격과 내부 규약을 향한 정부의 ‘딴지’는 헌법 정신과 세계 각국의 일반적인 흐름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에 저항한 35명의 전임자들이 교단 밖으로 밀려났다. 전체 전임자들의 절반 정도 수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시민의 불복종>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벌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 헨리 데이빗 소로우(2011),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36쪽.     


이런 목소리가 있다. 전교조가 과도하게 ‘정치화’의 길을 가고 있다. 이들은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근거로 전교조의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한다.


묻고 싶다.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적 편향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교육자가 교육만 이야기하면 ‘정치적’이지 않은가. 교실 밖 현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공명정대한 교육의 길인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는 정치와 정치적 편향성이 없는가.     


정치: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     


<초등 사회 개념사전>에 나오는 ‘정치’ 뜻풀이라고 한다. 초등생도 정치를 공부한다.

나는 정치 중립성을 운위하며 정치를 혐오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라고 단언한다. 정치, 함부로 욕하지 마라. 전교조는 동네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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