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생성 조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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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에는 ‘디키카 연구 프로젝트(Dikika Research Project, DRP)’라는 연구팀이 있다. 고인류 화석의 보고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디키카 지역을 중심으로 고인류와 관련된 화석을 발굴하고 분석하는 일을 한다. DRP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인류의 진화 과정이라고 한다.
2010년 8월 DRP가 과학 전문 잡지 <네이처>에 한 포유류 화석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09년 에티오피아 아파 지역에서 발견된 문제의 화석은 포유류의 갈비뼈와 대퇴골 부위에 속하는 뼛조각 두 점이었다.
첨단 장비로 분석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34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한다. DRP가 <네이처>에 소개한 사진 속 뼈들은 단단한 망치 같은 것으로 내리쳐진 듯이 부숴져 있었다. 흥미롭게도 뼈에는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베어낸 흔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인류가 최초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호모 하빌리스가 살았던 약 250만 년 전쯤이었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 뼈들을 통해 인류의 도구 사용 시기가 그보다 훨씬 앞설 것이라는 관점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DRP를 이끌고 있는 제레세나이 알렘세게드(Zeresenay Alemseged)는 이 시기(약 340만 년 전) 인류 조상들이 도구를 이용해 고기를 바르고 뼈를 부숴뜨려 그 안에 있는 척수(脊髓)를 먹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뼈들을 남긴 주인공은 훗날 ‘루시(Lucy)’와 ‘살렘(Salem)’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종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은 인류의 직접적인 혈통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290만~380만 년 전 사이에 동부 아프리카 지역에 살았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DRP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면 도구를 사용한 최초의 주인공 자리가 호모 하빌리스 종에서 아파렌시스 종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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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에티오피아 북동부의 디키카 지역에서 한 여자 아기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유골에는 ‘살렘(평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살렘에 대한 연구도 제레세나이 알렘세게드 박사팀이 맡았다. 그는 그즈음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었다.
연구팀은 살렘 유골에 붙은 사암 알갱이를 일일이 하나씩 제거하는 고된 후속 작업을 벌였다. 5년간 이어진 작업 결과 살렘이 직립 원인이었으며, 330만 년 전쯤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살렘이 320만 년 전에 살았던 루시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루시는 1974년 고고학 명가인 영국 리키 집안의 루이즈 리키가 발견한 여성 화석으로, 현재 모든 현생 인류의 어머니로 평가받고 있다.
살렘은 홍수에 휩쓸린 후 사암 퇴적물 속에 파묻힌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 비운의 운명 덕분에 다행히(?) 자신의 몸을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살렘의 온전한 두개골과 상체 전부, 팔다리의 주요 부위를 볼 수 있다. 살렘에게는 채 돋지 않은 치아들도 있었다. 그것들이 턱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나이가 세 살 정도로 추정되었다.
언어의 기원과 관련하여 살렘이 남긴 부위 중 연구진의 눈길을 끈 것은 화석으로 바뀌기 힘든 설골(舌骨)이었다. 설골은 혀뿌리에 붙어 있는 ‘V’ 자 모양의 작은 뼈로서 발성이나 호흡 기능에 중요한 인두(咽頭)와 연결된다. 언어와 관련된 중요한 증거물이 될 수 있는 부위다. 연구진은 설골을 통해 당시 인류의 인두 구조와 발성 방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혀 근육에 붙어 있는 설골은 침팬지의 것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연구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이 내는 소리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인간 엄마보다 침팬지 엄마의 귀에 더 호소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시와 살렘이 속해 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종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매끄러운 언어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들에게 언어 비슷한 어떤 것이 있었다면 고릴라나 침팬지 등이 내는 단순한 꽥꽥거림이나 비명 소리에 가까웠을 것이다. 살렘의 몸에서 발견된 설골의 구조나 위치가 증거였다. 그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무척이나 시끄러웠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조상들이 좀 더 언어다운(?) 언어를 갖기 위해 꼭 거쳐야 했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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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살렘의 ‘시끄러운 언어’에서 벗어나 좀 더 ‘조용한 언어’를 구사하게 된 것은 약 15만 년 전쯤이었다. 우리 조상 인류는 이 시기에 이르러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신체적인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 언어진화론자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언어와 비슷한 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만 년 전쯤 원시 석기 시대의 조상들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루시와 살렘이 산 300만 년 전은 최초의 언어를 말하기에 너무 먼 과거다.
그런데도 언어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은 루시와 살렘의 시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의문 때문이다. 이들이 암소의 살을 바르고 뼈를 부숴 골수를 먹은 것은 단순히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의도적인 어떤 ‘생각’ 덕분이었을까. 미지의 동굴에서 골수로 만찬을 즐길 수 있게 될 때까지 이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언어 진화와 관련하여 많은 연구자가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적어도 우리 조상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무엇이 있어야 했을까. 언어진화학자들은 첫 번째로 이야깃거리를 꼽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상상해 보아야 한다.
학자들은 최초의 호미니드(Hominid, 사람과 그 조상이 포함된 동물 계통)가 단어를 만들어 내는 데 상당히 많은 전제 조건이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하여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고든 갤럽(Gordon G. Gallup)이 수행한 유명한 실험 하나를 살펴보자. 그 명성이 후대에 길이 남게 되는 이 실험은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거울 테스트였다. 갤럽은 침팬지가 거울 속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실험 결과 갤럽은 침팬지가 거울을 이용해 자신의 신체 부위를 본다는 결론을 내렸다. 침팬지들은 입 속을 관찰하면서 이빨을 한참 들여다보거나 이를 잡기도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무시하는 대다수의 다른 동물과 달랐다. 침팬지가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갤럽의 연구 결과를 들은 사람들은 충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에는 자기 인식 능력과 같은 수준 높은 인지 활동이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시기였다. 이후 갤럽의 실험을 반증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시도되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오히려 갤럽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연구 사례가 꾸준히 축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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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미국 과학자 다이애너 라이스(Diana Reiss)와 로리 마리노(Lori Marino)가 실시한 실험을 보자. 이들도 거울을 실험 도구로 활용했다. 먼저 돌고래가 거울을 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몸 부위에 검은색 표식을 칠했다. 수조 바깥쪽에 붙여 놓은 거울을 통해 돌고래의 행동을 관찰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돌고래들은 자신의 모습이 반사되는 거울 쪽으로 헤엄쳐 와서 몸에 칠한 표식을 확인하려고 했다. 연구자들은 돌고래가 스스로를 보려는 욕구를 가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5년 말, 콩고 공화국에서 한 무리의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행동을 하고 있는 고릴라를 관찰했다. 고릴라들은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막대기로 물의 깊이를 재는 듯한 행동을 했다. 2007년에는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의 연구팀이 세네갈 남동 지역의 침팬지들을 지켜보았다. 얼마 뒤 연구팀은 침팬지가 여우원숭이를 사냥할 때 막대기 끝을 날카롭게 해서 창으로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릴라와 침패지의 ‘사고’나 ‘생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례들이다.
사고하고 생각하는 동물의 본보기로 코끼리를 빼놓을 수 없다. 코끼리는 고도로 조직화한 모계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래서 코끼리 무리에게는 나이 지긋한 연장자의 현명한 지혜가 필요한 일이 많다. 코끼리 수컷은 12~15년 정도 무리에서 살다가 조용히 떠나간다. 이와 달리 코끼리 암컷은 계속 무리 안에 있으면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기억하면서 살아간다. 무리의 지도자와 같은 구실을 자임한다.
실제로 코끼리 암컷은 무리에서 ‘여왕’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그녀(?)는 수백 마리의 친한 코끼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맛 좋은 과일이 어느 곳에 있는 나무에서 열리는지 잘 안다. 사회적이고 실용적인 이 정보들은 후손들에게 꾸준히 이어지면서 무리의 지속적인 생존을 돕는다. 여왕 코끼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무리의 생존을 돕는 지식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배워 기억하는 힘, 달리 말해 사고하고 분석하는 능력들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최초의 인류 화석 중 한 명인 루시가 추락사한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2016년 9월 5일자 <한겨레> 기사(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59898.html)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