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Sep 10. 2016

여중생의 냉소, 식은땀 났다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2)

1


동희는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교내에서 온갖 말썽을 다 피우는 것으로 모자라 학교 밖에서까지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김 선생님(가명), 박 선생님(가명)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몇 년 전, 학년 초를 무탈하게 보낸 우리만의 조촐한 기념식(?!) 자리였다.


동희는 김 선생님이 그 전 해 만난 제자였다. ‘전설’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김 선생님은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고 한다. ‘끝까지 널 믿겠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고 끈기 있게 기다리며 거의 1학기 내내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학기 말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동희가 또 다른 큰 ‘사고’를 쳤다. 경찰까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들어보니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김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등교하자마자 교실로 쫓아갔다. 격한 목소리로 동희를 호되게 나무랐다. 책상 다리를 있는 힘껏 발로 차면서 끓어 오르는 감정을 토해냈다. 그러고는 별다른 말 없이 곧장 교실 문을 나왔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동희가 주뼛거리며 교무실로 들어섰다. 김 선생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진정성을 느껴서 그랬을까. 김 선생님은 이런저런 잔소리 한 마디 내놓지 않은 채 동희를 조용히 돌려 보냈다고 한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희가 시나브로 조금씩 변해 갔다. 껄렁거리고 말썽을 피우는 ‘버릇’은 여전했으나 마음에 큰 변화가 온 듯했다. 동희는 중학교를 무사히 마쳤다. 평범한 여느 아이들처럼 졸업한 뒤 인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야기를 마무리짓던 김 선생님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요새 동희가 아침마다 전화한다니까.”
“안부 전화 하는 거예요?”


내내 듣기만 하던 박 선생님이 물었다. 박 선생님은 사석에서 나를 ‘형’이라 부르는 후배 교사였다.


“그렇지.”


밝고 흡족한 목소리였다. ‘그렇지’를 내놓는 김 선생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2


어린 시절을 우직한 농군 자식으로 자랐다. 시커멓게 가난한 집이었다. 분주한 농사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에게 제대로 관심 한 번 쏟지 못하셨다. 덕분에(!) 동생이나 동네 친구들과 함께 산과 골목을 쏘다니며 맘껏 뛰어놀았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큰소리로 야단 한 번 치지 않으셨다. 숙제를 안 하거나 공부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셨던 적이 없었다.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며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스스로 공부하고, 특출나게 성적이 잘 나왔던 것도 아니다.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기다림’이었다고 본다. 나를 향한 한결 같고 진심 어린 ‘믿음’이 밑에 깔린 그런 기다림 말이다. 그건 마치 농군이셨던 부모님들께서 농사 짓는 것과 흡사했다.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둘 때까지 부모님께서 하시는 일은 차분한 기다림과 하루하루 정성을 다한 노동이었다.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지 않으셨다.


부모와 자식, 농사꾼과 작물 사이에서만 그럴까. 기다림과 믿음은 모든 관계의 기본이다. 김 선생님 마음을 상상해 본다. ‘꼴통’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아이를 거의 한 학기 차분히 지켜보았다.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화’를 억누르며 뜻한 말로 다독였다. 인간적인 믿음을 놓지 않으려 했다. 삶을 길고 넓게 보는 여유와 관용 덕분이었을 것이다.


3


김 선생님이 동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을 때, 내 머리에 선화(가명)가 떠올랐다. 선화는 그해 새로 만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다. 뭐랄까. 선화는 대놓고 ‘도발하거나 반항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보면 평범했다.


하지만 그즈음 선화는 내게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온통 내 머리를 헤집어 놓고 있었다. 밥을 먹고, 운전대를 잡으며, 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 선화가 떠올랐다. 개학 후 첫 날 수업에서 내게 보여 준, 이루 말할 수 없는 ‘싸늘한’ 태도 때문이었다. 싸늘함으로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겨울 왕국>의 ‘엘사’가 손으로 내쏘는 차가운 ‘얼음 광선’쯤 될까. 그날 나는 선화의 냉랭한 표정에 기가 질려 등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며칠 전 수업 시간이었다. 활동지에 짧게 모방 시 한 편을 쓰는 활동을 했다. 여느 때처럼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설명할 때 딴짓을 하다가 뭘 해야 할지 잘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설명을 들었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도움말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교실 반 바퀴를 돌아 선화가 앉은 자리 옆으로 갔다. 선화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다리를 반으로 접어 선화 책상 옆에 쪼그려 앉았다.


“선화는 교과서 작품 좀 봤니?”


대답하지 않을 걸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 정도였다면 ‘식은땀’ 따위는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선화는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엎드려 있었다. 대꾸 한 마디 없었다. 선화의 활동지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민망했다. 선화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거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떨리는 감정을 억눌렀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선화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선화야, 선생님 말 안 들리니? 선생님이랑 말하기 싫어?”
“······.”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왜 부르는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짜증 나고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눈빛이 기세등등했다. 그 이상 건들면 폭발해 버리고 말겠다는 ‘경고’ 같았다.

 

그런 눈빛은 정말 무섭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든다. 스스로 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무서운 눈빛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걸 꾹 참으며, 나는 눈과 입 주변에 살짝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힘들지? 그래도 시는 한 번 훑어 보렴. 모두 12행밖에 안 되거든.(우리가 읽고 있던 교과서 시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었다.) 읽는 데 크게 힘이 들진 않을 거야. 오늘은 모방 시를 짓는 시간인데, 선화는 이쪽 앞에 있는 활동에 아직 손을 안 댔구나.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적는 것이니까 자유롭게 적어 보자. 활동지에 있는 쓰기 칸은 다 채우지 않아도 돼. 생각과 느낌을 너의 말이나 문장으로 적는 게 중요해. 한 문장이어도 괜찮으니까 찬찬히 보고 써 보렴.”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변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 선화는 고개를 쳐들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건성으로 쥔 볼펜으로 활동지 한쪽을 톡톡 두드렸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그 직전의 상황에 비한다면 ‘큰’ 변화였다.


4


그로부터 며칠 뒤 수업이었다. 선화가 한 시간 내내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일부러 못 본 척했다. 선화가 은근히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치를 본다는 건 내가 선화의 ‘관심권’ 안에 있다는 말이다.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며칠 전과 비교하면 큰 변화였다.


“선화야, 선생님 좀 볼까?”


그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선화를 조용히 불렀다. 후다닥 일어나 복도로 나가려다 말고 교탁 쪽으로 왔다. 마지못한 몸짓이었다.


“선화야, 이따가 선생님이랑 대화 좀 할까?”
“······.”
“종례하고 잠깐 시간 내 주면 좋겠는데···. 오 분이면 돼. 그럴 수 있겠니?”


선화가 아주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떨렸다.


“그래, 그러면 이따가 담임 선생님 종례 후에 교무실에서 보자.”


휴대전화 이야기를 핑계로 선화와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 전까지 선화는 조그만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에 불만과 귀찮음과 이유 없는 저항과 짜증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는 수업 시간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날 오후 선화는 교무실에 오지 않았다. 예상한 바였다. 그 정도로 호락호락(?) 넘어갈 아이가 아니었다. 그다음 날 복도에서 선화를 마주쳤다. 다른 친구 하나와 매점에 다녀오는 길인 듯했다.


“선화야, 어제 종례하고 많이 바빴니?”
“아니요.”
“선생님이 기다렸는데···, 교무실로 좀 오라는 말 잊어버렸구나?"
“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말투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표정이 밝았다. 입가와 눈빛에 약간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 영락 없는 열다섯 살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선화와 대화 좀 하고 싶었는데, 선화는 그러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일부러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선화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착각이었을까. 그때 선화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살짝 내비친 듯했다.


“알았다. 다음에 보자. 어서 들어가 수업 준비하렴.”


선화는 고개 한 번 꾸벅 하지 않고 교실로 들어갔다. 첫 수업 때 느껴지던 냉랭함이 다시 느껴졌다. 그러나 직감했다. 선화 마음 속에 단단히 가로놓인 빗장이 조금은 아래로 내려갔다고.


5


수업 중에 자신의 미래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고 해 보자. 중1은 고민 끝에 엉터리 그림을 그린다. 중3은 나름대로 어른스럽게 현실적인 미래를 그려 놓는다.


중2는 어떻게 할까. 그림은 안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친구와 장난을 친다. ‘왜 그림을 안 그리는 거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점쟁이도 아닌데 제 미래를 어떻게 그려요?”


까칠하지만 당연한 말이다. 찬찬히 따져 보면 그 중2 아이의 내면이 담겨 있는 답변이다. 브랜드유리더십센터 이진아 소장이 쓴 <중2병 엄마는 불안하고 아이는 억울하다>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2는 중2다!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수업이었다. 선화네 반 자리 이동이 있었다. 교탁에서 가까운 곳에 선화가 앉아 있었다. 두루 보니 자리를 바꿔 앉은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제자리로 가라고 했다. 선화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옆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다. 다시 한 번 자기 자리로 가라고 말했다. 말과 눈빛에 단호함을 담았다.


선화가 마지 못한 몸짓으로 자기 자리에 갔다. 교과서 갈피 사이에서 활동지를 꺼냈다. 볼펜을 톡톡 치면서 낙서를 하는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슴이 떨렸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기다리면, 한결 같고 진심 어린 믿음을 주기만 하면, 그날이 언제가 되었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가와 눈빛에 서린 옅은 미소만으로 펄펄 기운이 났다. 한때 꼴통이었던 제자로부터 매일 같이 안부 전화를 받고 있는 김 선생님이, 박 선생의 물음에 ‘그렇지’라고 말할 때의 벅찬 보람과 기쁨을 조만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 이관희 선생님은 <선생으로 사는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무조건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 거의 끝까지 아이들은 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선생은 그래도 그의 말을 듣고 함께해야 한다. 기껏 한두 달 공부 좀 해보려고 하다 실망해버리고 자포자기하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선생도 아이가 몇 달, 심하게는 일 년 내내 끝까지 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더라도 그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선생이란 1학년 때 뿌린 씨는 2학년 때 혹은 3학년 때, 사실은 학교 졸업하고 나서, 중년이 되어서야 그의 마음 한 구석에서 꽃 필 것을 믿어야 한다. - 이관희(2015), <선생으로 사는 길>, 삼인, 303쪽.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습관” 된 능력주의, 문제 없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