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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22. 2016

<정글북>의 ‘모글리’도 말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람의 언어 습득 (1)

1


조셉 싱(Joseph Singh)은 미국 출신 목사였다. 1920년 인도 동북부 벵갈 주 캘커타 근처에 있는 메디니푸르(Medinipur)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고다무리(Godamuri)라는 마을에서 숲속 괴물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며칠이 지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문제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숲을 뒤지던 싱 목사 일행은 어느 굴에서 늑대와 함께 있던(싱 목사의 사례를 최초로 전한 지역 신문 기사에서는 호랑이 굴로 보고했다고 한다.) 어린 아이 둘을 발견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야생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늑대처럼 네 발로 걸으면서 사람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싱 목사는 아이들을 메디니푸르로 데려와 아내와 함께 보살피기 시작했다. 둘 모두 소녀였다. 나이는 각각 여덟 살과 한 살 반 정도로 짐작되었다. 아이들은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싱 목사는 ‘카말라(Kamala)’와 ‘아말라(Amal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카말라와 아말라는 일어서지 못하고 두 손과 두 발로 기어다녔다. 음식을 손으로 집지 않고 혀로 핥아 먹었다. 한동안 밤중에 허공을 향해 세 번씩 울부짖었다. 카말라와 아말라의 몸은 완벽한 사람의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행동 양식이나 습성은 정확히 늑대의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1921년 9월에 동생 아말라가 병으로 죽었다. 발견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때였다. 동생이 죽자 언니 카말라가 엿새 동안이나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 뒤 싱 목사 부부는 카말라가 인간 생활에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보행과 언어 교육을 시켰다. 그 덕분이었는지 1년 반만에 직립하여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언어 교육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본격적인 언어 교육을 받은 후에도 유아들이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1926년까지 카말라가 습득한 단어 개수는 고작 30개 정도에 불과했다. 죽기 전까지 습득한 단어의 총 개수도 45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1929년 11월 카말라는 이질(痢疾)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일본 심리학자 스즈키 고타로(Suzuki Gotaro)는 자신의 책 <무서운 심리학>(2010년, 뜨인돌)에서 카말라와 아말라 이야기가 심하게 부풀려졌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이 글의 관심 범위를 벗어나므로 더는 살피지 않는다.)


2

     

1937년 미국 일리노이 주와 오하이오 주에서 6살짜리 소녀 애나(Anna)와 이사벨(Isabelle)이 자기 집 2층 다락방에서 갇혀 지내다 발견되었다. 두 소녀 모두 사생아로 태어났다. 애나와 이사벨의 엄마들은 이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다락에 가두어 세상에서 철저하게 단절되게 길렀다. 애나와 이사벨은 정상적인 언어 환경에 거의 노출되지 못해 언어를 배우거나 쓰지 못했다.


197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카말라 자매와 비슷한 소녀가 발견되었다. 소녀 이름은 지니(Genie)였다. 생후 8개월 무렵부터 벽장에 갇혀 지낸 지니가 발견된 것은 열네 살이 거의 다 되었을 때였다. 그 야만적인 감금 생활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이 ‘더러운’ 세상에 물드는 것이 두려웠던 아버지 때문에 시작되었다. 평범한 소녀는 아버지의 왜곡된 사랑 때문에 14년 동안이나 세상과 격리된 어두운 벽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정상적인 언어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애나와 이사벨과 지니는 발견 당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인도의 깊은 숲속에서 발견된 카말라 자매와 다르지 않았다. 이사벨은 지속적으로 언어 교육을 받아 영어를 완전히 습득하게 되었다. 애나는 발달 지체를 보이는 지진아(遲進兒)와 비슷하게 언어 습득 과정이 매우 불완전한 모습을 보였다.


지니의 경우가 흥미롭다. 언어학 교과서들에서는 지니가 모어(영어)를 배우는 과정이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비슷했다고 적고 있다. 연구자들은 지니에게 단어 사용법이라든지 문장 구조를 열심히 가르쳤다. 지니는 이것들을 제대로 익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언어를 배우는 모든 과정을 어려워했다. 발견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지니는 두 살 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언어 능력을 보여주었다.


3


카말라 자매는 ‘야생아(野生兒, feral children)’의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설 <정글북>에 나오는 주인공 ‘모글리’와 비슷하다. 애나와 이사벨과 지니는 언어학 교과서에서 ‘고립아(孤立兒, isolated children)’의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야생아와 고립아는 사람의 언어 습득과 관련한 의문을 푸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지니와 이사벨의 경우를 견줘가면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이사벨은 모어인 영어를 완전하게 습득했다. 지니는 영어 습득이 지지부진했다. 일군의 언어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모어를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critical age)’를 지난다. 언어 습득이 다른 어느 때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다. 학자들은 대략 6세 정도를 결정적인 시기의 기준 연령으로 삼는다. 여섯 살 무렵 발견된 이사벨이 자신의 모어인 영어를 완벽하게 익히게 된 것이 이러한 사실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6세 시기를 지나면 지날수록 모어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연구자들은 대략 12세 정도를 최종적인 한계 연령으로 본다. 그 후부터는 말 익히기가 모어 ‘습득’이 아니라 외국어 ‘학습’처럼 진행된다. 열네 살짜리 지니가 모어인 영어를 외국어를 익히는(학습하는) 것처럼 배운 까닭이 이런 한계 시기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단어나 문장 구조를 외우는 식으로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


결정적인 시기에 있는 아이들이 익히는 언어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 환경 속의 언어다. 원래 국적이나 인종이나 부모가 쓰는 언어와 무관하다. 한국에서 태어난 두 살짜리 철수가 미국으로 입양된다면 그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배울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실은 언어가 앞 세대에서 뒤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사회적이거나 환경적인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말해 준다. 언어 습득의 학습설이나 환경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영화 <정글북> 포스터다. 다음(Daum) '영화'(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7427)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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