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 in 포르투갈
새로운 도시로 넘어오면 다시 동네 탐방이 시작된다. 새 장소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힘든줄도 모르고 오전 수업, 오후 여행이라는 빡빡한 일정을 힘차게 소화한다. 그러다 일주일 쯤 지나 가볼만 한 스팟들을 한번 쭉 훑고 나면 슬슬 스케줄이 느슨해진다. 한번 다녀온 걸로 충분한 곳, 주말에 수업이 없을 때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서 다시 둘러볼 곳들이 어느 정도 추려지면 이제 일상과 여행이 묘하게 섞이는 지점이 시작된다.
생각해보면 처음 일주일은 숙제를 치르는 마음인 것 같다. 여행서에 혹은 블로그에 “OOO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할 곳 Top 5”의 제목을 따라 도시 지도에 추천장소들을 표시한다. 그리고는 그 목록에 따라 동선을 짜고 일정을 소화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남들 다 가본 곳을 나도 다녀왔다는 만족감과 이 도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식사의 메인 코스를 무사히 마쳤고 이제 남은 건 남은 여운을 즐기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일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화려한 메인 코스보다 그 후의 디저트가 더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메인 코스에는 다채로운 맛과 이색적인 경험들이 가득차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편화된 기준으로 정해진 목록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포인트들에 맞춰 정해진 장소들 말이다.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 중 하나이지만 나는 또 “나”이구나를 여행을 하면서 점점 느끼고 있다. 수많은 여행지들을 방문하며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알아가는 중이다.
장기 워케이션을 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전에는 여행을 오면 길어야 3일, 짧으면 하루 이틀 만에 도시를 이동하니 매일 매일이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하나라도 놓치는게 아까워 해가 뜨면 숙소를 나가 깜깜한 밤까지 정신없이 쏘다녔다.
녹초가 될수록 뿌듯해지는 일중독 증상이 여행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도장깨기 마냥 스팟들을 점령하고 나면 카메라에는 화려한 장소들이 무수히 쌓였지만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다. 엄청 비싼 부페에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데 막상 집에 오니 정신없었던 기억만 남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워케이션 동안 나는 한 도시에 2주, 길게는 3주씩 머물렀다. 그러면서 의무적으로 꼭 챙겨야할 대표 관광지들을 나만의 시선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블로그나 여행서에 워낙 설명들이 자세히 나와있어 읽는 것만으로 대충 어떤 곳일지 감이 왔다. 아무리 인기 있어도 일단 나와 맞지 않는 옷이다 싶으면 과감히 제꼈다.
2주동안 다낭에 있으며 아침마다 미케비치를 걸었지만 정작 테마파크 바나힐에는 가지 않았다. 리스본 근교 신트라에서는 화려한 페나성보다 옛 포르투갈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를 구경하며 더 시간을 보냈다.
포르투는 동루이스 다리도 멋지지만 다리 옆 도우루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 때 들었던 새소리, 고요히 흘러가던 강물이 기억에 선명하다. 목이 말라 들렀던 동네 구멍가게에서 할머니들과 손짓발짓 수다를 떨다가 가방에 있던 한국산 파스를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포르투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이다.
이 모든게 디저트를 먹으며 얻은 선물들이다. 이러니 점점 메인 코스 기간이 짧아질 수밖에. 뭔가 주객이 바뀐듯한 느낌이지만 나한테 맛있고 배부르면 되는 거 아닐까? 내일은 또 어떤 디저트를 먹어볼지 여행지의 밤이 설레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