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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 Apr 08. 2024

리스본 물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워케이션 in 포르투갈

미국 사는 동생과 통화를 하던 중 포르투갈 여행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동생은 자기 옆집 지인이 매년 포르투갈로 휴가를 간다며 포르투갈의 장점들을 속속들이 알려주었다. 일단 물가가 엄청 싸고 음식이 맛있으며 도시가 평화롭고 사람들이 친절하다. 


장기 여행을 준비하며 재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나는 물가 이야기에 안도를 했다. 한국 감자와 사과 가격이 세계 1위를 찍었다는 뉴스도 나오는 판에 잠깐 포르투갈로 떠나있는 게 오히려 현명할지도 몰랐다.   



막상 포르투갈에 와보니 진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리스본 물가는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식사한끼에 10유료 이상, 환율로 따지면 만오천원정도는 줘야 구내식당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적당히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는 20에서 30유료가 거뜬히 나왔다. 옷이나 신발 등 공산품들 역시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긴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할때부터 느낌이 쎄하긴 했다. 원룸인듯 아닌듯 커튼으로 방과 거실이 분리된 자그마한 숙소가 하루 15만원에 육박했다. 좀더 중심가쪽에 구한 숙소는 2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주거비와 생활비는 어느 정도 비례하니 이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여행재정에 심각한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것을.    



여행 첫날, 패닉에 빠진 우리를 구해준 건 동네 마트였다. 사과 한알이 채 4백원도 채 되지 않고 주렁주렁 열개도 넘게 달린 토마토 송이는 2천원을 넘지 않았다. 삼겹살 4인분 분량이 단돈 7천원에, 소고기 스테이크 부위는 둘이서 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사과 한알로 에피타이저를 시작해 토마토, 귤, 오렌지, 멜론 등 서너가지 과일을 빵과 함께 먹었다. 저녁이면 다양한 고기를 구워서 가져온 고추장에 상추쌈을 먹었다. 식당에서 놀란 가슴이 마트에서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빵! 빵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포르투갈어라는 걸 이곳에 와서 알았다. 포르투갈어로는 pao(마지막 알파벳 o는 우리말로 이응발음이 나서 실제로 “팡”이라고 읽는다). 빵 원산지 국가답게 이곳 빵은 정말 맛있다.

 


아침마다 6시부터 골목마다 빵집들이 문을 열고 사람들은 출근하기전 자신들의 단골 빵집을 찾는다. 대부분 설탕이 전혀 들어있지 않는 식사빵에 햄과 치즈 혹은 버터를 발라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는다. 겉으로 보기엔 투박해 보이는 맨빵같지만 한입 베어물면 그 풍미에 깜짝 놀라게 된다. 진한 홉냄새가 입안 가득 퍼지고 씹을 수록 고소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매일 아침, “그렇게 좋아?”라는 남편의 말에 난 바보같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아침마다 그렇게 빵에 홀딱 빠져버렸다.  



워낙 빵순이라 한국에서도 내노라하는 빵집들을 숱하게 찾아다녔더랬다. 저 멀리 지리산 남쪽 부터 제주, 강릉, 대전 등 전국 방방 곡곡을 다녔지만 이런 빵맛을 본적이 없었다. 설사 이 비슷한 맛이 있었다 하더라도, 세련된 인테리어에 화려하게 진열된 빵을 손떨리는 가격으로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가 매일 먹는 쌀밥마냥 그냥 식사빵일 뿐이었다. 투박한 진열장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빵을 툭툭 손으로 뜯어먹는다. 단돈 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만 맞은 반절의 행복이 너무 커서 나머지 불만이 쏙 들어가 버렸다.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집 아래 빵집을 찾는다. 이제 제법 단골이 되어 주인아저씨가 먼저 주문할 빵을 물어봐 주신다.“잡곡빵에 버터 발라서, 맞지?”아줌마 아저씨들과 함께 빵을 뜯으며 행복도 함께 곱씹는다. 그래, 이 맛에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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