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 Apr 24. 2024

말라가, 반경 1킬로미터의 행복

워케이션 in 스페인


말라가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도시이다. 스페인 남부 여느 도시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 도시는 굵직한 국제선 비행기들이 오가는 공항이 있을만큼 규모가 크다.


하지만 막상 여행자의 입장에서 누리는 공간은 말라게리타 해변, 그리고 히브랄파로 성과 피카소 미술관 등 주요 관광지가 모여있는 자그마한 동네가 전부이다. 구글 지도로 1킬로미터 남짓이니 30분이면 동네 끝에서 끝으로 걸어갈 수 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일주일을 머물렀다.


꽤나 심각한 선택장애를 가진 우리 부부에게 이 도시는축복같았다. 볼거리가 많은 유명한 도시는 방문해야할 관광지들이 즐비하다. 엎치락 뒤치락 경쟁이라도 하듯 여행책 페이지에 끝도 없이 목록이 이어져 있다. 목록이 길수록 우리는 더 불안해졌다.


여기를 다 가 봐야하는가, 그렇다면 어디부터 가야하나, 장소들은 어떻게 묶어야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일까…. 이어지는 질문에 벌써부터 지치곤 했다.



그런데 이곳 말라가에서는 그런 고민들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반경 1킬로미터 동네에 볼게 많으면 얼마나 많겠는가. 실제로 말라가에는 굵직한 관광지들이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안된다. 그것도 서로서로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말이다.


한 곳을 보고 다른 곳을 방문하려고 구글 지도를 검색했을 때 “걸어서 4분”이라고 뜰 때의 희열이란. 더구나 그 대여섯 군데 밖에 안되는 관광지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니 그야말로 소수정예다. 한마디로 말해 말라가는 알짜배기 도시이다.


그렇다면 이 알짜배기 도시의 탑 오브 탑은? 우리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말하자면 바로 말라게리타 해변이다.


동남아시아 바다처럼 물빛이 아름답지도, 지중해 바다처럼 광활하지도 않지만 말라게리타 해변에서는 눈이 아닌 몸이 행복하다. 특별한 액티비티들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의 흐름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바다를 있는 그대로 느끼기만 하면 된다.



동이틀 무렵 해변가 가게들이 하나 둘씩 문 열 준비를 하고 아침 잠이 없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신다. 해변가를 따라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새소리와 경쾌하게 어우러진다. 여느 동네의 아침 풍경 마냥, 해가 뜨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닷가로 모여든다. 한마디로 말라게리타 해변의 일출은 소박하고 고요하다.



4월의 말라가는 햇살이 기분좋게 따사롭다. 점점 높아지는 태양 아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긴다. 책을 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가족들과 공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누워서 하염없이 햇살을 맞는다.


남편은 태양 아래 누워있는 사람들을 물곰족이라고 불렀다. 적당히 달궈지면 뒤집어졌다가 바로 누웠다가 옆으로 돌았다가 하는 모습들이 꼭 물곰떼 같다나.


그리고 우리 역시 매일 물곰족에 합류했다. 말라게리타해변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같았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피부를 달구지만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또 뜨거운 기운을 시원하게 식힌다. 냉탕과 온탕이 절묘하게 교차되는 느낌이랄까. 햇빛과 바람에게 열심히 마사지를 받는 것만 같다.



더 신기했던 건 전혀 습하지 않은 날씨였다. 우리나라 바닷가는 습도가 높아 조금만 더워도 땀이 나고 끈적이는데 말라게리타 해변은 몇시간을 누워있어도 피부가 뽀송뽀송했다. 처음에 해변가 사람들을 보았을 때는 어떻게 저 끈적한 비치에 누워있을까 신기했는데 한번 있어보니 몇시간이고 있을 수 있었다. 아니 있고 싶었다.


뼛속까지 따뜻한 온기로 채우고 피부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파도 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리는 곳. 이제 말라게리타 해변을 생각하면 온몸이 기억을 떠올린다. 이 기억이 희미해질때 쯤, 또 한번 마사지를 받으러 올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리스본 물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