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눈도 붙이고 나니 열한시간 비행이 훌쩍 지나간다. 여행을 떠날 때와 돌아올 때는 체감 비행시간이 다르다. 여행지로 향하는 비행기는 몸도 마음도 그렇게 가벼울수 없다. 여행에 대한 설렘을 안고 미처 다 보지 못한 여행 책자를 뒤적이다보면 시간마저 가볍게 훌훌 지나간다. 말 그대로 비행기와 함께 두둥실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에 놀라곤한다. 시작되지도 않은 여행을 앞두고 이렇게 감수성이 넘쳐 흐를 수 있다니ㅋ. 좁디 좁은 이코노미석 내 자리가 영화 속 무대 같다. 어두운 기내 안에 홀로 켜진 독서등. 모놀로그 배우마냥 꽤 심각한 표정과 함께 책을 정독해본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까도 까도 양파같은 이 매력덩어리들. 사진 속 모습만으로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눈으로 마주하면 어떤 모습일까. 마음은 이미 그 땅에 있다.
드디어 랜딩. 경유지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 밟아보는 네덜란드 땅이다. 허브 공항 답게 현대적이고 화려하지만 그건 곧 전형적인 공항의 모습이라는 얘기다. 얼핏 인천공항과 비슷한 느낌까지 난다. 장거리 비행에 시차까지 겹쳐 살짝 비몽사몽 하다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네덜란드인지 어리둥절하다. 경유 시간이 한시간밖에 안되 입국 수속을 서둘러야 하기에 네덜란드의 정취를 찾을 여유도 없이 일단 냅다 입국심사대로 뛰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요리 조리 주변을 살펴본다. 환하게 불밝힌 공항 내부, 영어로 된 표지판, 그 아래 네덜란드 직원들이 보인다. 훤칠하고 다부져 보인다. 기본 신장이 우리나라보다 십센치는 더 클것 같고 골격이 단단해 보이는게 운동선수 같은 모습이다. 입국 심사대의 두명은 특히 정복이 잘 어울려 모델 느낌이 나기도 한다. 히딩크 아저씨의 나라답게 역시 좋은 곳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막 정이 생기려 하는데 이런. 이 두 남자 일하는 모습이 영 눈에 걸린다.
밤이라 수속 라인은 딱 두줄, 그것도 한 줄은 유럽엽한국민 전용이고 기타 외국인들이 나머지 한 줄에 쭉 서야 한다. 대부분 네덜란드를 경유하는 사람들이라 다음 비행기 탑승을 위해 마음이 초조하다. 서둘러 처리해달라고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기본적인 속도는 지켜줘야하지 않을까. 우리 담당 수속 직원이 자꾸 딴짓을 한다. 옆 사람 일처리에 참견하고 얘기를 나누더니 급기야 자리를 비우기까지. 십분 이십분 안에 비행기를 타느냐 못타느냐가 걸려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황당한 일이 없다.
사람들의 초조한 표정을 못본듯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가 네덜란드의 첫인상이 되어버렸다. 돌아가는 비행기도 네덜란드를 경유해 이 곳을 또 방문한다. 열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 암스테르담 시내까지 나가볼 생각인데 지금의 이미지를 지워 줄 좋은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수 있을까. 글쎄. 일단 지금은 뛰어야 한다. 포르투행 비행기 보딩이 시작되었다.
"씨 포틴, 씨 포틴, 씨 포틴....."
연신 게이트 번호를 중얼거리며 우다다다 뛰었다. 배낭과 카메라까지 들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정신없이 뛰다 보니 저 멀리 게이트가 보인다. 탑승중인 승객들이 보이자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 맨 꽁지에 붙어 숨을 고른다.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고 전부 외국인들이다. 승객들도 승무원들도 키가 너무 커서 꼭 거인국의 난쟁이가 된 기분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쫑쫑쫑 비행기로 들어간다.
이제 됐다. 두시간 후면 포르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