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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Mar 04. 2017

상황과 감정

둘 다, 나가 !

오후.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냥 전화했다고 했다. 점심은 먹었냐고 물어왔다. 먹었다고 했다. 듣자니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왜, 무슨 일 있냐고 물어 달다고 하는 것 같다.
 
“왜, 무슨일 있어?”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사건은 이랬다. 첫째와 점심을 먹었는데, 첫째가 시계가 사고 싶다고 했단다. 영화 ‘닥터스트레인져’에 주인공이 차는 시계 같은 것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단다. 듣자니 그냥 시계가 아니고 좋은 시계를 말하고 있었는데,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반대의견을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첫째는 기분 나빠하며, 밥 먹는 내내 얼굴을 굳히고 불편하게 했다고 했단다.
 
“그래? 이런 철없는 자식, 내가 따끔하게 한마디 하도록 할게.” 아내는 명랑한 목소리로 “저녁에 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첫째가 학원에서 돌아왔다. 잠시 틈을 주고 내 방으로 오라고 했다.
 
“낮에 엄마와 무슨 일 있었어? 엄마가 속상해 하던데……” 첫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일 없었는데? 왜? 시계 사달라고 한 거 말고는 별일 없었는데?” 내가 의아해졌다.
 
“그래? 엄마 엄청 속상해 하던데? 시계 못 사주는 것 보다, 니가 화가 나서 있는 게 보기 불편하고 힘들었던 모양이던데…… “ 그러자 첫째는 그래도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내친김이다. “아들아, 앞으로 살아가면서 니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반대에도 많이 부딪힐 텐데 그때마다 감정 노출하면 힘들어 질거야. 관계에도 좋지도 않고. 의견에 대한 반대는 그 의견에 대한 반대 자체만으로 받아 들이고 ‘나를 미워하나? 와 같이 개인적 감정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도록 하는 게 좋아.” 중언부언하며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 대해 감정을 자제하는 훈련을 쌓으라고 해주었다. 잘 알아 듣는 듯 했다.
 
안방으로 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따끔하게 혼냈지”. 아내는 무슨 말이지 하며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계 말이야……”  아내가 말했다. “아, 시계. 저렴하고도 세련될 걸로 사주기로 했는데!”
 
아~ 놔~. 나, 뭐한 거야.
 
이때 첫째가 안방에 들어와 아내와 웃으며 [낄낄거리며] 얘기하는데 화가 치밀었다.
 
“둘다, 나가 !!!”
 
<상황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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