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문 Feb 02. 2019

고향길

동안보다 동심

아내가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예요. 별일 없으시죠? 예예 저희도 잘 있습니다. 어머니 저희 일요일 내려갈게요. 가면 음식 같이 하세요. 먼저 힘들게 하시지 마시고요. 혹시 필요한 것 있으세요? 예예. 참, 제사상에 쓸 사과는 저희들이 가져갈께요. 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운전 조심해서 천천히 갈게요. 일요일 봬요.”
 
 아내는 또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엄마, 나야. 아픈데 없지? 시댁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 갈게. 일요일 새벽에 출발할 거야. 도착할때즘 전화할게. 알았다 알았어 또 그 소리. 조심한다니까.”
 
 아내는 며느리로 또한 딸로 이 설을 지내게 될 것이다. 며느리와 딸.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만들어진 말일 것이고 아무리 딸 같아도 진짜 딸 같이 엄마같이 서로에게 편할 수는 없으리라.
 
 우리 모두는 누구의 누구이고 다른 누구의 누구이다. 딸로 아들로 태어나 학생으로, 군인으로, 직원으로, 사장으로, 며느리로, 사위로, 각종 역할을 해내며 살아간다. 그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역할들. 몸은 하나지만 많은 다른 역할들. 그나마 그 역할이 역할극이 아니면 다행이다.
 
 누구의 아버지 어머니, 누구의 남편 아내로 그 역할이 줄어들다가 종래에 나 자신만으로 돌아오며 우리들은 수고한 한 세상을 버리게 될 것이다.
 
 삶은 과정도 결과도 아니다. 삶은 순간이다. 순간순간이 전부이며 느낄 수 있는 최대치 일 것이다. 오십이 넘은 내가 이 순간 이 설을 맞아 가져야 할 것은 동안의 얼굴이 아니라 아마도 해맑음 동심이 아닐까 한다.
 
 모든 시름 걱정 놓아두고 해맑은 동심으로. 순간순간 열심이었던 그때의 그 동심. 그 해맑은 동심으로 설을 지내고 올 것이다.
 
 해맑은 영화 <극한직업>에서 이무배를 만난 테드창이 말한다. “왜 해맑고 지랄이야”
 
 <여러분, 해맑은 설 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 축하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