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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Apr 04. 2020

관계는 논리보다 감정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서울에서의 저녁 약속 시간 18:00.

현재시간 16:55.

전철을 3번 갈아타면서 약속 장소까지 걸리는 시간 1시간.

5분은 버퍼 타임.


시간 계산은 끝났고 갈 준비도 끝났다. 일어서는데 아내가 말했다. 정자역까지 태워줄게. 기흥역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신분당선으로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줄여주겠다는 선의에 바탕을 둔 호의. 선택의 순간이다.

1안, 호의에 감사하며 차를 얻어 타고 정자역까지 간다.

2안, 호의에 감사하지만 거절하고 예정된 계획대로 움직인다.


1안이 더 좋고 편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2안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금요일이고 도로는 예측하기 어려우며 경험적으로 가는 길의 도로 사정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아내는 정자역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하니 왕복에 소요되는 시간은 차치하더라고 여전히 경제적으로 에너지 낭비가 동반된다.


결론적으로 2안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2안을 선택할 수가 없다. 2안을 선택하면 이에 따른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 장황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수고는 당연하지만 하나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호의가 무시당한다는 아내의 심리적인 감정을 보상해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다룰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논리에 우선한다.


1안을 선택했고 약속시간에 17분 늦었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묻는다. “잘 갔어?” “응 잘 갔어~”라고 말하는데 1안을 선택하기 잘했다는 비합리적인 행복감이 든다. 결국 관계에서는 논리보다 감정이 우선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 진실 일지라도 말이다. 태워준 댓가로 토요일 아침 볶음밥을 해 주고서도 말이다.


<감정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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