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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Apr 10. 2020

나는 문제 해결사

가족의 의미

아내가 부른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며 국그릇 속에 밥그릇이 끼어서 빠지지 않는다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SOS를 접수하는 바로 즉시 즉각적으로 당장 투입하여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힘을 이리저리 주어 본다. 빠지지 않는다. 만만치 않은데 이거.


깨버릴까? 하나는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그릇 값이 아니라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다. 남자로서의 자존심 말이다. 남자는 여자가 문제를 말하면 바로 공장 헬멧을 눌러쓰면서 허리에 연장 벨트를 매고 손에 드라이버를 잡는다. 남자 본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제 그릇을 분리하는 것이 나에겐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이 순간, 다른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일들은 사라진다. 지구온난화, 코로나 19, 선거, 출근까지도 말이다.


끙끙. 그러나 힘으로는 도저히 안된다. 순간 둘째가 일전에 아내와 첫째 그리고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이런 문과들!”. 그래, 이럴게 아니지. 머리를 써야지. 그래, 온도에 따른 팽창력을 이용하는 거야. 싱크대에서 뜨거운 물로 바깥의 국그릇이 닿도록 뒤집어 한참을 흐르게 했다. 다시 힘을 준다. 안된다. 젠장.


짜증이 난다. 뭐야 이거. 갑자기 문제를 일으킨 아내 얼굴이 스친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내다 라는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이 든다. 결자해지라는 사자성어도 생각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유유자적인데 내가 왜 이렇게 낑낑대고 있어야지. 마땅찮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래도 가장인데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게 맞지. 아내가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가족을 위한 일을 하다가 불가피하게 발생한 거잖아.


가족. 가족이야 말고 사회주의의 전형인 거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지. 만약, 능력에 따라 일한 아빠가 그 돈으로 아픈 딸 약값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을 것.


자본주의는 철저히 가족친화적이지 않은 것이다. 어느 교수님의 말이 생각난다. 한 가정에 200억 정도의 재산이 생기면 그때부터 (그 가족의 사회주의는 작동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득세하게 되어) 다툼과 소송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릇을 부여잡고 너무 나갔다.


암튼. 한번 더 생각이 발전한다. 아니다. 오히려 아내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지 않는가? 내 존재의 효용가치를 느끼게 해 주잖아.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다시 그릇에 붓는다. 더욱 강력한 온도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시 힘을 준다. 앗. 그러다 그릇을 살짝 놓쳤다. 퉁. 싱크대 바닥에 떨어지는 그릇. 다행히 깨어지지 않고 분리만 되었다. 와우. 문제가 해결되었다. “여보, 해결했어!!!”라고 소리치려다 겨우 참았다.


<나는 문제 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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