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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Aug 21. 2020

어떤 전화

왜 전화를 했는지 잊지 말기

전화가 왔다. (외국계) 은행 대출 담당자라고 했다. 아마도 은행 직원은 아닌 모양이고 대출상담사인 모양. 얼마 전 상가 매매 중개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해당 물건의 상세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 매수인이 대출을 신청했는데 등기부등본을 발급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주소를 알려주었더니 안 된다고 했다. 그럴 리가 있나? 지금 혹시 무인발급기 앞에서 주소로 발급하고 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보통 인터넷으로 다들 떼는데... 쩝.


동호수 앞에 '제'를 넣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된다고 했다. 끊으려는데 언성을 높이며 따지듯 말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제"자를 넣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사람을 고생시킵니까? 그리고 대지권 등기가 안 되어 있는데 이러면 대출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투덜투덜. 한참을 투덜대며 화를 냈다가 대출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몇 번씩이나 설명했고 나중에 설득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숨이 막혀 왔고 혈압이 올라갔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투덜이 스머프가 생각나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 듣고 나서 조용히 그리고 길. 게. 말해주었다.


"건축물대장에도 앞에 "제"라는 용어는 넣지 않고, 등기부등본 발급할 때 간편 검색을 이용하면 "제"라는 말을 넣지 않아도 발급되며, 통상 계약서에는 불필요하게 '제'라는 글자는 넣지 않습니다. 혹시 '제'를 넣은 계약서가 많은지 안 넣은 계약서가 많은지 한번 알아보세요. 그리고 여기 전체 단지가 도시개발구역이라 행정상 정리가 안되어 상가뿐만 아니라 5,000세대 아파트도 대지권 등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출은 제가 신청한 것이 아니며, 참고로 여기 인근 은행은 대지권 등기여부에 상관없이 대출 진행 다들 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화를 내고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차분히 물었다. "혹시 저에게 전화 왜 하셨는지 기억하시나요? 도와 달라고 전화하신 것 같은데. "


그러자 그 남자 "아이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하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통화하다가 왜 전화했는지 그 목적을 잊어버린 것이다. 살면서 다들 그럴 때가 있긴 하지. ㅎㅎㅎ


<어떤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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