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이 물에 잘 빠질까
지난달, 지인의 초대로 간만에 골프 라운딩을 갔다. 한때는 80대 타수를 쳤고 안정적인 90대 초반의 보기 플레이어였는데. 이게 뭔가. 백돌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골프는 타수를 낮추는 숫자의 운동이 아니라 나에겐 자연과 호흡하고 동반자와 웃으며 막걸리 먹는 소풍인 것이니 백돌인들 어떠하리.
초대해준 분은 물리학과를 나와서 진공장비 분야에서 30년 관록의 배테랑. 고진공 저진공 등등 압력에 관한 한 내가 아는 최고의 진공분야 일인자다.
골프는 늦게 시작했지만 몰입 정신으로 벌써 80대 타수를 친다. 골프 스윙과 골프코스를 물리학적으로 계산하는 분. 손바닥의 굳은살을 손톱깎이로 깎아내면서 연습을 한다고 하니 좀 무섭긴 하다.
아니나 다를까. 밀린 파3. 기다리는 틈에 골프 물리학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색다른 주제. 나름 재미가 있다. 그의 얘기들 들어보자.
그린 주위에 워터 해저드가 있으면 왜 공이 물에 많이 빠지는 걸까. 마침 기다리고 있던 파3 좌측에 물이 있다. 홀을 보며 하는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1. 그린 상공은 압력이 높은 편이고, 워터해저드 상공은 상대적으로 압력이 낮다는 것.
2. 따라서 압력차가 발생하게 한다는 것.
3. 압력이 높은 곳은 들어오는 물질을 밀어내는 성질이 있다는 것.
4. 그곳을 진입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
5. 그래서 공이 힘 있게 제대로 맞지 않으면 가다가 압력에 밀리고 상대적으로 압력이 낮은 워터 해저드 쪽으로 빨려 든다는 것.
그럴듯하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다. 문과를 나왔지만 나름 반도체 진공장비 분야에서 20년을 넘게 있다 보니 이해가 된다. "와우~ 놀라운 발견이군!"
이때, 문과를 나오고 평생 문과 일만 한 동반자 한 명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머리로는 이해되는 듯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표정. 내가 나섰다.
"야야 잘 들어봐. 내가 쉽게 인문학적으로 설명해줄게. 너, 잔디 귀신 들어봤어? 그럼 물귀신은? 잔디 귀신은 없어도 물귀신은 있는 거야. 그러니 공이 자꾸 물 쪽으로 가는 거야!"
설명을 한 사람도 나를 보며 "그러네 ㅎㅎㅎ"
<굿샷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