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내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하루ㅜㅜ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 시계를 보니 07시 땡이다. 문을 여니 관리실 직원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밤에 온수 수도관이 샜다고 했다. 복도가 물을 흠뻑 머금고 있다. 어찌어찌 관리소 직원이 계량기 쪽의 이음새를 다시 연결하여 겨우 누수를 잡았다. ㅜㅜ
아침을 먹고 출근하려고 하다 혹시나 해서 다시 보니 이번에는 냉수가 조금씩 새고 있다. 웁스. 관리소에 다시 연락을 했으나 오질 않는다. 교대시간인 게지. ㅜㅜ
아까 하는 작업을 본 터라 부품이 필요하겠지. 급히 인근 철물점에 가서 새 연결 부품을 사 왔다. 여전히 직원은 감감. 에라이 내가 해보자. 끙끙대고 스패너 잡고 씨름을 해서 연결을 했다. 물이 새지 않는다. 뒷정리를 하는데 직원이 이제야 올라온다. ㅜㅜ
좀 늦어진 출근.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한다. 화장실 배는 아닌 듯하다. 위층의 가정의학과를 가자고 했더니 젊은 여의사가 믿음직스럽지 않다고 했다. 사무실 인근 남자들은 진료도 잘 보고 예쁘고 친절도 하다는데. ㅜㅜ
급히 사무실을 나와 집이 있는 동네로 향했다. 10년 단골 내과. 50대 후반의 남자 의사는 나 만큼 머리가 하얀 게 오늘따라 믿음이 간다. 아내의 배를 이곳저곳 누르더니 맹장인 것 같다고 했다. 소견서를 써주며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한다. 자기가 그렇다고 하면 10명에 8,9명은 맹장이라고 하면서 ㅜㅜ
분당에 있는 종합병원. 코로나 선별 검사소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응급실에는 다행히 다급한 환자가 적은 모양. 코로나 때문에 환자만 들어가고 보호자는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실에 앉아 모니터로 현황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아, 베고프다. ㅜㅜ
음… 3시간이나 지났을까. CT촬영과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가 보호자인 나를 찾아 말했다. “맹장입니다. 바로 오늘 수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ㅜㅜ
수술절차를 밟고 이제는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아내가 밥 먹고 오라고 한다. 그래 먹자 먹자. 병원 앞 분식집. 혼자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손님이 없다. 여기 라면 하나와 새우튀김으로만 1인분 주세요. 5분이 지나며 남자 종업원이 튀김을 내오며 말한다. 썪어서 맞죠? ㅜㅜ
괜찮아요. 그냥 먹을게요 하고 웃는데 주방 쪽에서 외친다. 손님, 치즈라면 맞죠? 안돼. 이건 안돼. 다급히 소리친다. 치즈라면 아니고 그냥 그냥 라면이요!!! 제발 그냥 라면으로 좀 먹.고.싶.어.요!!! ㅜㅜ
그렇게 내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는 바쁘고 바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치즈를 넣기 직전이라 그.냥. 라면은 먹었다. 와우~
<세상이 나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바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