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질문으로
"아빠, 현금 좀 있나~?" 아침. 같이 아침을 먹은 둘째 아들이 씻고 머리를 말리다 서재방 앞으로 와서 나에게 묻는다. 현금 좀 있냐고. 보자 보자 어디 보자. 현금이 어디에 얼마나 있더라;;;
"아빠 용돈 좀 주세요!"라고 했으면 아마도 나의 다음 질문은 "어디 쓸건대?" "엄마에게 달라고 해!" "벌써 용돈 떨어졌어?" 라거나 뭐 이렇게 이어졌을 것이다. Auto-pilot system. 자동항법장치에 따른 자동 생각 기능이 작동하는 것.
그런데 이놈은 나의 능력을 물어보고 있지 않은가? 그럼 나는 보통의 자동항법장치 기능은 꺼지고 내 생각에 공간이 살짝 생기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음... '내가 현금이 있던가? 어디 있지? 얼마나 있지?'
아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현금을 찾아 내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 바지 주머니에서 현금을 찾았다. 5만 원짜리 한 장이 보인다. 5만 원. 음 좀 많은데.... 5만 원권이라 따로 나눌 수도 없고.
5만 원 줄까? 했더니 나야 고맙지 한다. 그런데 펼치니 그 속에 1만 원 한 장이 더 들어있다. 만원이면 안될까 라고 물어보려다 그만둔다. 내 능력을 보여줘야 하므로. 5만 원을 건네준다.
5만 원권을 받아 든 아들은 1만 원권을 들고 있는 내 손을 보다 고개를 들어 활짝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엄지 척한다. ㅎㅎㅎ 아이고 요놈 요놈. 용돈을 주고도 내가 다 고맙네. ㅎㅎㅎ
같은 내용을 다르게 접근하며 부탁을 질문으로 바꾸는 둘째가 어떨 땐 놀랍기도 하다. 저런 걸 누가 가르쳐 준거야. 잠시 후, 아들이 다시 나를 부른다. 시계를 보니 등교시간에 좀 늦었다.
"아빠 아빠, 나 좀 태워줄 수 있나?" 음.. '아빠 나 늦었어 나 좀 태워줘!"가 아니다. 벌써 차키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혼자 웃는다. 그래그래 내가 태워주마 내가 태워주마. ㅎㅎㅎ
<발상의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