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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Mar 20. 2016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한다.

그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내 주위 몇 미터만 볼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존재와 부딪히고 깨트린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왜?  모호하고 잘 모르며, 그다지 깊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고자 하는 열정도 가끔은 생긴다. 하지만 그 열정도 때가 되면 식는다. 열정이 식는다는 것은 진리에 가깝다. 아는 사람을 보더라도 또한 나를 보더라도 열정은 식게 마련인 것이다. 어떤 것도 시간을 이기긴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주위가 환해지면 우리 모두는 곤란해진다. 주위에 깨지고 부러지고 상처받은 온갖 존재들이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모두 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내 우리는 어둠을 탓하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고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냐고 오히려 우리는 당당해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어쩌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주어진 한계인 것을.


그럼에도 한계가 면제부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한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밝아진 주위를 보면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 탓할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상처를 치료하고 내 주위의 상처받은 존재를 보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삶의 독화살을 맞는다. 장담하건대 우리 모두 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 독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때다. 중요한 순간이 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독화살을 맞는 순간이 아니라, 그 독화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모든 걸 가른다.


독화살을 어떤놈이 쐈는지 찾아 복수하여, 무너진 내 정의를 바로 잡을 것인가? 아니면 먼저 그 독화살을 뽑고 상처를 치료할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대게의 우리는 알고 있다. 비행기에서 비상사태로 산소호흡기가 위에서 내려왔을 때 나 자신이 먼저 쓰고 동반자나 주위 사람을 씌워 주라고 바행기 탈 때마다 우리는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삶의 독화살을 맞은 분, 우선 자신부터 치료합시다. 복수는 나중입니다. 살아 있어야 복수도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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