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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Sep 15. 2016

어머니와 수박

주면서 이미 행복한 것, 사랑이라.

칠순을 훌쩍 넘기신 내 아버지. 여전히 수박을 좋아하신다. 너무 좋아하신다는게 맞을 것이다.


어린시절. 장에 다녀오시는 어머니는 무거운 수박을 머리에 이고 10리길을 걸어 오시곤 하셨다. 여름날 펌프질로 지하수를 퍼 올려, 그 물에 담가 놓았다가 먹는 수박. 어찌나 달고 시원했던지. 요즘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수박에 비기랴.

제사를 지낸 추석날 아침. 거실에서 아내와 형수가 제사상에 올랐던 과일을 내 왔다. 그 중에는 수박도 있었다. 수박을 보신 어머니. 지금껏 수박을 한번도 양껏 드셔 보시지 못했다고 하셨다. 수박 좋아하는 어버지 때문었다고 했다.

한여름 들에서 땀흘리고 돌아오시는 어버지에게 시원한 수박을 한조각이라도 더 드리고 싶었다고 하셨다. 땀을 닦으며 마당에서 바로 마루에 걸터 앉아 한조각 베어 드시면서,

"아따~ 스원하네~~~" 하는 모습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형이 물었다. "아버지께서 엄마에게도 수박 챙겨 주시던가요?" "글쎄 그런 기억이 없네." 그러자 형이 말했다. 그 것 보라고. 다 필요없다고. 엄마나 잘 챙겨드시리라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억울한 기색 없이 가만히 웃으셨다.

안방에서 거실의 이런 얘기를 들으신 듯, 아버지가 거실을 내다 보며 한마디 하셨다. "보래이, 그.. 수박 좀 더 내서 묵으라? "


와 ㅎㅎㅎ 모두가 웃는 거실쪽을 바라보시고 어버지도 웃으셨다. "아이구 왠일 이래~" 하며 어머니는 카르르르 새색시처럼 웃으셨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주는 것이리라. 주면서 이미 스스로 행복한 것.

어머니 수박은 그것 이었으리라. 주면서 이미 기뻤던 것.

<나도 내 아들도 수박을 좋아한다.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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