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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Sep 23. 2016

꽃의 시간

유한하니 찬란한 삶

선배 꽃집을 찾았다. 선배는 없었다. 그의 아내가 중년의 여자 손님과 그녀 아들에게 화분을 팔고 있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사랑해요'라는 리본이 달렸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기억하지 못했다. 중년 여자의 남편으로 착각했다고 했다. 후배라고 말하지 않고 꽃다발을 주문하고 건네받았다.


꽃집에 있던 꽃은 꽃다발이 되어 이사를 왔다. 장미 몇 송이. 백합 몇 송이.

다음날 꽃다발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 꽃병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6일째. 봉오리만 있던 백합은 그동안 점차 피더니 마침내 절정으로 만개했다.


꽃 또한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 유한한 시간을 부여받았을 것이다. 꽃가게, 꽃다발, 꽃병으로 오며 그 시간은 더 짧아졌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견뎌 온 시간. 이제 마감해야 하는 시간을 예감한 듯, 날개를 활짝 최고치로 펴고 마지막 숨을 몰아 쉬고 있다.


내일은 7일째, 안식일. 향기는 이제 사그라들 것이다.


만개한 꽃에서 느끼는 생명의 유한함.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애잔하며, 유한하니 찬란한 것. 마지막 시각까지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꽃들아,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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