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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Nov 05. 2016

이 또한 지나 가리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미팅 중에 업체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지 못하고 문자를 보냈다. 급하다고 다시 문자가 왔다. 전화를 했다. 샘플로 제작한 물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어. 오늘 납품일인데…… 5개월간의 긴 설득과 양해와 협상과 합의의 순간들이 확 지나갔다. 감정이 올라왔다.

 

아니다. 이러면 안 되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소 안정이 되었다. 그동안 이 건을 성사시킨 오랜 시간과 힘든 노력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미 벌어진 것에 대해 화내지 말자.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일단 생각하자.


1안. 하자 있는 물건을 보낸다. 큰 하자가 아니라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옵션이다. 2안. 미국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만드는 것이다. 이때 계약 차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다시 만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1주일. 그래 후자다. 미국에 전화를 했다. 사정 설명을 했고 양해를 구했다. 내부 검토하여 회신 주겠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영어로 전화하니 힘들었다.


하루가 지났다. 업체 사장은 안달이 나서 자꾸 전화를 했다. 이틀이 지났다. 답이 없었다. 메일을 보냈다. 또 하루가 갔다. 삼 일째 답장이 왔다. 수락.


제품은 다시 잘 만들어졌고 검사도 통과했다. 다음 주 월요일 비행기에 태울 것이다.


위의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예전과 다른 나를 발견했다. 상황에 동요되지 않았다. 현상 그 자체로 문제의 일부가 되기보다 문제로부터 벗어난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감정적으로 사건에 흔들리지 않았고 반응하지 않았으며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래 이것이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의 의미를.


옛날 중동에 한 왕이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행복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심한 반응을 보였고, 행복한 그 순간도 일순 낙담과 좌절감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왕은 그런 자신과 삶에 몹시 지쳤다. 어느 날, 왕은 현자에게 말했다.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소. 내 삶에 마음의 평화와 조화와 지혜를 가져다 줄 무엇인가를 줄 수 있겠소? 만약 그렇게 해 준다면 원하는 대로 보상을 해 주겠소.”그리하여 그 현자는 금반지를 만들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구를 새겨 바쳤다.


다 아는 이야기다. 왕이 솔로몬으로 바뀐 버전도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너무 유명해져서 흔해져 버렸다. 그러나 그 말 자체는 흔하게 취급할 것이 아니다. 심오한 인문학적 통찰력과 깨달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니 가리라’. 이 말은 고난이 닥쳤을 때 탁월한 위로의 말이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는 위로가 되지만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오히려 삶의 기쁨을 반감시키는 것처럼 들린다. ‘너무 행복해하지 마라. 이 행복도 오리 가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고 나는 느낀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유명 사진작가가 일생일대의 장면을 포착했다. 전설로만 전해 들었던 맹수를 발견한 것이다. 그때 그는 놀랍게도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사진도 행복도 나도 곧 사라지리니, 이 행복의 순간을 온전히 누리자.

 

내 의식과 현실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긴 것 같다. 반지의 문구는 나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를 알아차리고 살아가라고. 저항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집착하지 말라고.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다만 내 생각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세잌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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