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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Nov 15. 2016

같이 있진 않아도

나란히 있진 않아도

비는 오지 않았다. 마음이 바쁘다. 토요일은 내가 청소당번이라 청소는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참석하기 위해 준비물을 가방에 담으며 집청소 걱정이라니 하며 피식 웃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벌’의 주인공이 전당포 노파의 살인을 위한 현장 답사차 집을 나서며 집세가 밀려 하숙집 여주인과 마주칠까 봐 마음 졸이며 “그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면서, 이토록 하찮은 일을 두려워하다니”하며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하는 심정이랄까.

광화문행 버스를 탔다. 만원이었다. 빈자리가 없었다. 아픈 다리를 생각하며 또 한번 피식 웃었다.

승객들을 살폈다. 복장이 다채로웠다. 일하러 가거나 쇼핑 가는 복장은 아니었고 대게 운동화를 신고 메는 가방을 안고 있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행동하며 함께하고 있구나.

버스는 남대문세무서 근처에서 멈추었다. 경찰이 도로를 막고 통제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방향잡긴 어렵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방향이었다. 깃발을 앞세운 단체들이 거리를 행진해 가고 있었다. 박근혜 하야, 퇴진이란 문구가 선명하고 큰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87년 6월이 생각났다. 그때만큼의 결기는 아니었지만 더 많은 군중은 또 다른 시대를 예비하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 이순신장군 동상앞에 자리를 잡았다.

앞줄, 딱지 하는 꼬마들과 함께 온 서울말씨의 일가족.

뒷줄, 기차표가 동이 나서 겨우 버스를 타고 오느라 늦었다며 너스레 떠는 전라도 사투리 50대 후반의 남자.

오른쪽, 익산에서 왔다면 인사해 오는 40대초반의 부부.

광화문으로 간다. 아무래도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천운을 기대해보자라고 문자 보낸 진주 사는 친구.

뵙긴 힘들겠지만 함께하니 좋으네요라고 문자 보낸 안양에 사는 전직장 동료.


페북에서 “만날뻔했네요”라는 답글의 업계 지인.


같이 있진 않아도 나란히 있진 않아도 함께함에 좋은 하루였다.


<같이 있진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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