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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Dec 03. 2016

마법의 한 마디

그러게~~~

늦게 귀가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웠다. 바빠서 저녁도 먹지 못했다. 그냥 자기가 섭섭. 부엌을 뒤졌다. 라면이 있었다. 한봉이 남아 있었다.


제길. 신라면이라… 최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농심 법률 고문직을 맡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어나고 있는 불매운동이 생각났다. “신라면”도 먹지 말라는 것인데. 이것 참. 신라면을 끊어야 하다니. 쉽지 않은 불매운동이 될 것 같았다. 신라면 아닌가. 영국의 외로웠던 삶에 위안을 주었던 그 신라면 아닌가.


이미 사놓은 것이고 다른 라면은 없으며 이 시간에 다시 편의점 간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변명하면서 끓였다. 젠장. 맛은 따봉.


아침.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며 어제 몇 시에 들어왔냐고 물었다. 자정 무렵에 왔다고 했다. 라면 먹었냐고 물었다. 먹었다고 했다. 설거지 다 해놓고 잤는데 아침에 설거지할게 또 있으면 짜증 난다고 하며 얘기가 이어졌다.


밀렸다. 무어라고 변명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쩌지. 저녁 못 먹어서 그랬다 하면 ‘왜 못 먹고 다니냐’하고 애기가길어지고 불필요한 설명을 해야 하고. ‘감시자’의 정우성 대사가 생각났다.


에이 그냥. “그러게~” 했다. 그러자 잠시 공백이 생기며 아내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한다.


옆에 있던 첫째가 내게 '엄지척'과 함께 한마디 했다. “나이스. 멋진 디펜스였어~”


한 번 해보세요. 합리적인 설명이나 억지 변명은 잠시 미루고. 그냥 “그러게~”.

마법 같은 결과를 보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보장은 못합니다.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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