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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Jun 26. 2019

6월이면 떠오르는 것

아버지와 나의딸

나의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주치의는 남은 시간을 훨씬 짧게 말했는데 아버지는 강한 의지로 힘겨운 병원 치료를 받으며 5년을 버티셨다. 진단 받을 당시 암이 너무 많이 진행되어버린 탓에 강도 높은 치료를 거듭했지만 암세포의 맹렬한 기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나는 삼성의료원 산부인과 분만실에 누워있었다. 진통 9시간 만에 아기가 나왔다. 몇 시간 후 간호사가 아기를 작은 침대에 눕혀서 내가 있는 병실로 데려다주었는데 배가고픈지 계속 울었다. 간호사가 엄마젖을 먹여보라며 아기를 안겨주었는데 젖을 줄 수가 없었다. 젖을 물리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다행히 순산을 했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줘서 식구들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엄마와 여동생은 곧바로 아버지 병실로 달려가야 했다. 산후조리가 필요했던 나에게는 알리지 않고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병원으로 향하던 도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한 것이다. 


손주를 많이 예뻐하셨을 텐데 외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시기 전 이미 복수가 차고 식사를 못하셨기 때문에 마음에 준비를 어느 정도는 하고 있었다. 비록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당신의 딸이 무사히 건강한 아기를 낳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주일을 버틴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곤 한다. 


최근 아이가 친구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뒤틀린 감정은 당사자들만이 풀 수 있을 것이다. 제3자가 끼어들어본다고 뾰족한 해법은 없겠으나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 마음인가. 무심한 듯 슬쩍 문제가 뭔지 물어봤다. 

“그 친구는 참 배려가 없어. 자기 얘기는 하루 종일 떠들다가도 내가 얘기하면 듣지도 않아.”


집이 가까워서인지 그 친구랑 전화 한통 받고 쪼르르 나가서 놀다온 적도 많았고 나중에는 그 아이로부터 남자친구까지 소개받았다. 


“평소에 그 친구와 삐거덕거리면서도 친구로 잘 지냈잖아. 요번에는 왜 이렇게 심각해?”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한 적은 없어. 항상 그 친구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거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 만나는 거고. 자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얘기하니까 그 뒤로 SNS를 모두 끊어버리더라고.”


그 친구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남자친구문제로 울면서 고민 상담을 했는데 듣자마자 웃음을 빵 터뜨렸다고 했다. 그게 뭐가 고민거리냐며 웃었다고 했다. 함께 고민을 공유해주기를 바랬고 위로받고 싶어서 말을 꺼냈을 텐데 아이는  더 큰 상처만 받은 셈이었다. 


내가 학창시절 아버지로부터 늘 들었던 말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살라는 거였다. 행동을 조신하게, 학교에서는 선생님말씀 잘 듣고 부모에게는 공손하게. 말 잘 듣던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응했고 은연중에 내 아이도 그렇게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외동으로 자라는 딸아이가 이기적이고 주변을 챙기지 못하는 아이로 비춰질까봐 늘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그 친구 행동은 거침없었고 다른 사람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 같았다. 전혀 다른 환경과 문화의 아이들이 서로의 다양한 보습을 볼 때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기는 듯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교우 문제로 고민하는 걸 거의 본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힘들어 하는 걸 보니 나도 속이 상했다. 그러면서 일정부분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해주었다. 엄마가 자라온 환경, 가정교육이 자신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말해주었다. 또한 그 아이가 자라온 환경이 너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라고 했다. 


사경을 헤매던 외할아버지는 갖 태어난 손녀딸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딱 일주일 동안 만 같은 세상에 있었다. 아이의 생일날이 되면 언제나 아버지의 기일이 얼마 안 남았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이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지만 갈등을 겪으면서 보여준 모습 속에서 할아버지의 환영을 본 것 같아서 내심 놀라웠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버텨서 아이가 크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생일이자 아버지의 기일인 6월이면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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