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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Jul 11. 2019

깜언(고마워요), 호이안아줌마

다낭에 가면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겨야지. 쇼핑도 하고 맛있는 베트남 음식도 실컷 먹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낭행 비행기표 결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섣부른 상상은 화를 부른다. 경험해봐야 진짜가 뭔지 말할 수 있다. 내가 겪은 리얼 다낭 여행은 이랬다. 


다낭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어리바리한 관광객 행세를 제대로 했다. 그랩 택시를 이용하라는 네티즌들의 충고대로 호기롭게 휴대폰 앱을 실행시켰다. 택시 예약은 바로 잡혔고 가격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어떤 차가 내 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공항 앞을 오가는 많은 차들 중에 오직 번호판으로만 내 택시를 식별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저녁 9시가 넘어서 사방은 어두웠다. 내가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어느 틈엔가 한 남자가 다가와 내 휴대폰을 낚아챘다. 나에게 묻지도 않고 그랩 앱을 종료하더니 자신의 핸드폰으로 가격을 보여줬다. 순식간에 호객꾼의 먹이가 될 뻔했으나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호객꾼에게 필요 없다고 말한 후 다시 차를 예약했다. 당당하게 택시를 잡고 호텔로 간다는 예상부터 깨졌다. 


다낭의 밤 풍경은 매우 활기차 보였다. 가게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느긋하게 걸으며 구경하고 싶었는데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사람을 위한 길은 오토바이의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공사를 하는지 길이 파헤쳐진 곳도 많았다. 가게 밖까지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밥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끔 아무렇지 않은 듯 웃통을 시원하게 벗은 아저씨와 마주칠 때면 흠칫 놀라 시선을 피하곤 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너무 많아서 익숙해졌는데 나중에는 바지는 입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낭의 식당들은 에어컨을 갖춘 곳이 드물었다. 그나마 선풍기가 사방에 달려있는 규모가 큰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딸은 드디어 베트남 음식을 먹는다며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의 사진들을 꼼꼼히 살폈다. 나는 메뉴판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라임주스부터 시켰다. 입맛도 없고 땀을 흘리며 걸었더니 갈증이 났다. 큰 얼음을 둥둥 띠워서 준 라임향 가득한 주스가 나에게는 최고의 음식 같았다. 처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절대 얼음 음료는 사 먹지 말자 생각했으나 체감온도 섭씨 40도 가까운 나라에서 그런 원칙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쌀국수보다 라임주스와 망고주스를 더 많이 사 먹었고 코코넛 아이스커피도 매일 마셨다. 


여행하는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위생문제가 식사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숟가락과 접시들은 잘 닦았을까. 종이도 아닌 나뭇가지 같은 이 빨대는 혹시 재활용해서 쓰는 게 아닐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식사 도중에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어서 우연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주방에도 에어컨이 없는지 연신 땀을 닦으며 요리를 하는 남자들이 보였다. 길 위에서처럼 시원하게 웃통을 벗고 있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뒤로는 입맛이 더 없어져서 맛있게 먹는 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다낭에서 하루를 보낸 후 이동한 호이안에서도 음식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았다. 


호이안에 한 리조트에 체크인을 한 후 올드타운에 갔다. 시장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강가에 도착했는데 강에는 배들이 정박해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구시가의 작은 골목마다 등이 켜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전등이 켜지자 시가지 전체가 연극무대처럼 환하게 빛났다. 오토바이에 인력거까지 더해져서 거리는 여전히 정신없었지만 밤 풍경만큼은 아름다웠다. 


골목 안쪽 외진 곳에 작은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여자 사장의 인상이 선했다. 서빙하는 젊은 여자들도 관광객과 현지인을 차별 없이 챙겨주었다. 구시가지를 잠깐 걸었을 뿐인데 목이 많이 아팠다. 오토바이 매연이 심한지 기관지가 부은 게 확실히 느껴졌고 입맛은 더욱 없어졌다. 주문한 볶음밥과 반세오가 나왔다. 볶음밥 자체는 특징 없는 맛이었는데 짭조름한 피시소스에 함께 비벼먹으니 풍미가 확 살아나면서 맛이 달아졌다. 아이는 정말 맛있게 모든 음식을 싹싹 비웠다. 건강한 식성이 부러웠다. 나는 밥은 거의 못 먹고 라임주스만 한잔 더 마셨다. 


다음날 오전 호텔 앞 빅토리아 비치에 나가보았는데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인 것 같았다. 해변의 하얀 모래사장은 겉보기에는 예뻤지만 불구덩이처럼 뜨겁게 달궈져 있어서 맨발로 걸을 수가 없었다. 신발을 신고 있어도 사이사이 들어오는 모래들 때문에 발바닥 고문을 받는 기분이었다. 바닷물은 미지근했다. 그래도 더위를 식힐만했다. 투명하게 비치는 옥빛 바닷물이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듯 깨끗했다. 해수욕을 마치고 비치의자에 앉아 있는데 아주머니 한 명이 커다란 광주리를 들고 다가왔다. 바구니 한가득 팔찌, 목걸이 등을 팔았다. 나는 평소에 액세서리를 하지도 않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격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반색을 하며 광주리를 내려놓고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했다. 호텔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오래 했는지 영어가 어느 정도는 통했다. 아주머니는 모든 물건들을 자신이 직접 만든다고 했다. 나는 이 많은 걸 혼자 다 만들었냐고 물었다.


“가끔은 딸들이 도와주기도 해요. 하지만 학교 다니느라 바빠요. 공부해야죠.”


딸들은 16살, 12살이라고 했다. 10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게 뭐가 대수일까 했는데, 학교 얘기를 하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얻어야죠.”


유독 ‘School’이라는 말을 몇 번 강조해서 말했다. 자신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일까. 베트남 물가를 생각하면 바가지가 분명했지만 나는 우리 돈 3만 원 넘게 지불하고 팔찌를 몇 개 샀다. 기대 이상의 매출이었는지 아주머니는 자신의 오토바이로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직접 타본다고 생각하니 겁도 났지만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나와 딸은 힘겹게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아주머니는 꼭 붙잡으라고 말한 후 시동을 걸더니 바람을 가르며 과감하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아주머니의 운전 솜씨는 매우 우아하고 안정적이었다. 달리기 시작하자 무서움보다는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여느 오토바이처럼 아주머니는 교차로에서 경적을 두 번 빵빵 울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호텔 정문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내릴 때는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나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지금도 후유증 때문에 약을 먹는 신세다. 비록 여행의 환상은 보기 좋게 깨졌지만 호이안 아주머니와 나눴던 대화와 온화한 미소는 나에게 베트남 여행에 대한 기분 좋은 추억을 주었다. 호텔의 마사지 서비스 후 칭찬 몇 마디에 나를 덥석 안아주던 직원처럼 다낭과 호이안 사람들이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는 따뜻하고 순박했다. 


가족의 행복을 바라며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해변을 누비던 아주머니의 오토바이와 산호빛 팔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깜 언(고마워요), 호이안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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