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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Jul 28. 2019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만든 밥

내가 생각하는 집밥

며칠 전 딸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였다. 사태를 한 근 사서 냄비에 넣고 먼저 육수를 내기로 했다. 물이 끓기 시작했다. 거무스름한 거품이 떠올라 걷어냈다. 40분 넘게 삶았다. 끓여놓은 육수에 한 입 크기로 자른 고기와 미리 불려둔 미역을 넣고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끓였다.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마늘 조금과 참기름 한 방울을 넣어서 감칠맛을 주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요리를 하고 나니 그간 내가 해왔던 요리들이 떠올랐다. 아이가 대학생이 된 요즘은 새벽부터 요리를 하는 일이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하루는 요리로 시작되었다. 눈뜨자마자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야채를 다듬고, 고기와 생선 등을 구웠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니 바쁘게 움직였다. 불고기나 고등어조림 같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전날 미리 해놓기도 했다. 아이는 중고등학교 시절 꼭 아침밥을 챙겨먹었다. 아침을 거르면 2교시쯤 배속에서 전쟁이 난다고 했다. 급식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고역이라며 아침잠에 취해 눈도 못 뜨면서도 담아준 밥그릇을 싹싹 비우고 아슬아슬하게 등교를 했다. 


내 요리 취미는 아이와 함께 생겨난 것 같다. 결혼 초에는 요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따뜻한 밥을 먹으려면 먼저 쌀을 불린 다음 적당한 양의 밥물이 필요하다는 아주 기본적 상식조차 없었다. 친정어머니가 해주시는 밥만 먹었으니 말이다. 갈치구이는 미리 소금 간을 해야 한다는 것도 맛없는 생선살을 먹고서야 깨달았다. 

결혼하고 2년 뒤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정성껏 아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내 요리의 본격적인 시작은 이유식 만들기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집밥도 상품이 되어버린 요즘, 배달음식이나 편의점 음식들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간단하게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음식들도 많다. 나도 가끔 요리하기 싫은 날이면 홈쇼핑에서 주문한 음식을 상에 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반찬거리가 없어서 냉동실에 있던 포장 육개장을 바글바글 끓여서 밥상을 차렸다. 딸아이는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이거 집에서 만든 것 같은데, 엄마가 만들어준 맛이랑 비슷해.” 

어디서 무엇을 먹든 아이의 음식 평가의 기준은 늘 엄마 솜씨다. 


요리 과정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좋은 식재료뿐만 아니라 요리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각종 양념들을 적절한 양과 순서에 맞춰 넣어주어야 하고, 계속 들어다보면서 저어주고 뒤집어주고 때로는 인내심 있게 기다리기도 해야 한다. 이 모든 수고로움을 마치고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는 순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힘든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요리를 할 때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 대상이 없을 때는 아무래도 힘이 빠진다. 요즘은 유튜브에 음식 관련 콘텐츠가 넘치고 TV 방송에서 먹는 장면은 필수가 되었다. ‘혼밥족’들이 자신이 그리워하는 입맛을 현실에서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과 청각으로라도 대리 만족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친정엄마는 매일 새벽밥을 지어주셨다. 아침자율학습으로 악명 높았던 학교였는데 등교시간이 아침 6시였다. 나는 버스를 놓칠까봐 시간에 쫓기면서도 아침밥은 꼭 챙겨먹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점심과 저녁 도시락 두 개를 담았다. 




저녁 도시락이라지만 저녁까지 기다렸다 먹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당시 나의 어마어마한 식성 탓도 있었지만 그만큼 엄마 도시락은 너무 맛있었다. 

도시락을 열 때마다 어제와 다른 반찬을 만나는 설렘이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비엔나 소시지 볶음, 들기름을 바르고 맛소금을 솔솔 뿌린 후 석쇠에 구운 김,

매콤한 양념향이 올라오던 김치볶음까지. 

수험생을 뒷바라지하는 엄마의 숙명이라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다양한 찬들을 어떻게 매일 만들었나 싶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 집으로 갈 때면 빈 도시락에서 수저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시락 준비를 마치면 엄마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앉아계셨다. 

어둑한 새벽녘 다른 식구들은 모두 잠든 시간이었다. 엄마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부엌은 조용했고 음식 씹는 소리만 들렸겠지. 

식구들 몰래 남겨둔 게장 그릇을 내 앞으로 놓으시던 엄마 손끝에 양념이 조금 묻어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두운 새벽 부엌에서 혼자 밥을 짓던 엄마의 뒷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매일 아침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들던 것은 단순히 삼시세끼 밥과 반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딸에게 해준 요리에 정성과 사랑을 담아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엄마로부터 받은 유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조심스럽게 꿈꿔본다. 

언젠가 딸아이가 나 없는 세상을 살아갈 때, 

엄마를 떠올릴 수 있는 계기 중 하나가 내 요리였으면 좋겠다. 

프루스트가 마들렌과 홍차를 입에 넣었을 때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떠올린 것처럼. 

내가 만들어준 음식들이 딸의 마음에 따뜻한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여갈 수 있다면 

요리의 즐거움은 한층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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