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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Nov 13. 2019

약과 독

글에 대한 평가가 약이 되려면

글쓰기 수업에 간다는건 처방전을 받는 것과 같다.
처방전을 발급한 의사가 명의였다면 내 몸의 나쁜 세균을 박멸할 특효 약을 제공할 것이다.
돌팔이 의사였다면? 오히려 환자에게 치명적인 독과 같은 약을 받을 수도 하겠지.
그러니 수업에 참여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해독이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누군가의 평가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건 대체로 즐겁고 유익하다.

좋은 모임이 있으면 함께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가끔 그런 자리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최근 그런 경험을 했다.


이런 게 바로 전형적인
뜬구름 잡는 문장입니다.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튀네요.
너무 막연해요.
본인만 이해하게 쓰면 안되죠.

합평 후 모임을 마칠 때까지 나는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되도록 강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마음을 달래줄 해독제가 필요했다.


이 글 하나로 내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어.
도움이 되는 말이라면 받아들일줄도 알아야지.
이게 뭐라고 속을 끓일까.


독기운아 사라져라. 에너지야 솟아라.

나는 열심히 내 맘 속으로 해독제를 붓고 또 부었다.                                                                                                                                                                                                                                                                                                                                                                                                                                                                                                                         


글쓰기 비법은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내 손 끝에서 글이 나온 후에야 글쓰기 이론들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찾아가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내 글을 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다. 그 시선은 내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의 글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좀더 내밀한 타인의 삶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를 쓰게 만든다는 점이다. 제출할 과제는 글쓰기의 큰 동력이 된다. 이 세가지 이유만 생각한다면 나는 짧았던 글쓰기 특강에 참여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지적을 받겠다며 자진해서 돈과 시간을 들여서 그 자리에 나간거는 맞다. 하지만 너무 기운을 꺽는 강사의 지적은 어쩔 수 없이 아프게 남는 것 같다.


게다가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강사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걸까. 수업은 장마철 수박처럼 싱겁게 느껴졌다. 개괄적인 총평만 남기는 방식이라면 앞으로 더 많이 자주 쓸 수 있도록 열정을 북돋우는 말이라도 남겨주던지. 기가 꺾인채  나는 글쓰기 관련 수업은 당분간 듣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갈 무렵 누군가 강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쓴 글이 너무 맘에 안들고
모두 지워버리고 싶을 때는 어떻게할까요?
얼른 다른 글을 시작하세요.




그래. 그게 해독제였구나. 또 다른 글을 쓰는 것.


얼른  집에 가서 노트북을 켜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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