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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Nov 23. 2019

춘천에 가다

오후 1시30분쯤 출발했다. 티맵의 도착 예정시간 3시 5분.

강원도가 서울에서 참 가까운 곳이 되었군, 생각했다. 강변북로는 여전히 막혔지만 성수대교 즈음해서 정체는 풀렸고 시원한 한강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 시간도 안걸리는 짧은 드라이브지만 휴게소를 안들지면 왠지 서운했다. 특히나 저녁 먹거리가 필요할 듯했다.  호텔 1층에 양식당이었지만 메뉴를 보니 별로 내키지 않았다. 휴게소 음식을 조금 포장해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우선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가평휴게소라 그런지 음식마다 잣을 넣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나는‘가평더덕비빔밥’ 주문했다. 약 3분만에 식사가 나왔다. 놋그릇에 밥, 나물이 담겨있었다. 우거지국이 담긴 뚝배기, 고추장, 김치 등이 놓인 쟁반을 들고 점찍어놓은 자리에 앉았다. 더덕은 잘게 잘려져 있고 고추장 양념이 묻는 밥에 섞여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한숟갈 먹을 때마다 더덕이 씹혔다. 사각 사각 다른 야채들과 함께 씹히더라도 쌉쌀한 더덕 맛이 가장 강하게 입안에서 느껴졌다. 그 더덕맛이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쓴맛이 맘에 든다. 미지근한 우거지국도 한입씩 떠먹으며 텅 빈 식당 안에서 나는 느긋하게 점심을 마쳤다.


저녁거리를 뭘 살까. 우선 휴게소에서만 볼 수 있는 맥반석 오징어 한 마리구입. 요즘 오징어가 소고기보다 비싸다. 한 마리에 6,500원. 북촌손만두에서 찐만두, 튀김만두 9,500원, 마지막으로 잣가루가 솔솔 뿌려진 한과를 6,500원에 구매했다. 점심을 늦게 먹었으니 저녁식사는 간단하게 안주처럼 이정도면 될 듯했다. 다시 티맵을 켜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남춘천 방향 오른쪽 도로입니다‘ 내비의 안내에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하마터면 계속 달릴뻔했으나 다행히 차가 없어서 바로 차선을 바꿔 동그랗게 곡선을 그리며 램프를 돌아 통행료 징수대 앞에 섰다.


톨게이트부터 약 20분 정도 더 달린 듯했다. 티맵에서 숙소를 가는 경로를 한번 수정했다. '교통 상황을 반영하여 다른 길을 안내합니다.'  초행길은 전적으로 티맵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다보니 한적한 시골길에 접어든다. 길 왼쪽편으로 거대한 공사장이 보였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나 보다. 근처에 으리으리한 모델하우스가 있었다. 몇 년후 이곳을 다시 찾아온다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꿔어있을 것 같았다.


주차장 입구에서 잠시 헤매다가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보니 호텔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 안쪽 끝에 차를 세웠다. KT&G 상상마다 춘천스테이. 언 듯 보면 호텔이라기보다 공연장이나 멀티샵 같아 보였다. 짐을 챙겨 로비로 들어가니 왼쪽으로 프론트가 보였다. 사회초연생인 듯 앳된 여직원 둘이 앉아 있다가 얼른 일어나서 나를 맞았다. 그 중 한명이 매뉴얼대로 침착하고 친절하게 체크인을 해주었다. 편의점이 어디있는지 물으니 10분정도 걸어나가야한다고 했다. 편의점이 없는 호텔도 있구나.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오른쪽 복도로 꺾어지자 방이 나왔다. 복도에 깔린 카페트에 기하학적인 느낌의 잔 줄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호텔 곳곳에 재미를 주는 인테리어들이 많았다. 방은 작고 아늑했다. 실망스런 전망 때문에 프론트에 전화해서 다른 방이 없는지 물었다. 예약자가 많아서 불가능하단다. 인적이 거의 없고 이렇게 적막한 호텔에 예약자가 많다니. 의심이 들었으나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망은 포기하고 짐을 하나씩 풀 때 눈 앞으로 까만 점하나가 휙하고 날라갔다. 깜짝 놀랐다. 다시 빠른 속도로 방안을 가로질러 날더니 천장에 가서 앉았다. 파리인 듯 파리보다 큰 무엇 같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장을 본 순간 또 다른 벌레 한 마리가 여유롭게 기어다니고 있었다. 날라다니는 것과 달리 다리가 아주 많고 길었다. 벌레는 전망이 나쁜 것과 차원이 달랐다. 소름이 끼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재빨리 프론트 버튼을 눌렀다. 아까 여직원이듯하여 ‘접니다’라고 말하고 벌레가 있다고 알렸다. 여직원은 뭐라 묻지도 않고 ‘바로 조처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 같았다.


5분 정도 지나자 키가 큰, 역시 앳띤 여직원이 들어왔다. 손에 전기파리채를 들고 있었다. 천장에 붙어있는 놈은 화장대의 티슈를 몇장 뽑더니 의자 위에 올라가서 긴 팔을 뻣어 쓱 닥아내듯 잡았다. 파리는 어디 숨어버렸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직원에게 또 한마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방안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날라다니는 놈이니 못찾으면 어쩌나. 못찾겠다고 그냥 가버리면 어쩌나. 그럼 방을 바꿔달라고 떼를 써볼까.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타닥’ 화장실 안쪽에서 전기파리채에서 소리가 났다.

 ‘잡았어요!’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파리였어요!’

벌레쯤이야 하는 표정이 귀여웠다.

발만 동동굴렀던 나 자신이 좀 유난스러웠나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벌레가 나오면 다시 연락주세요!’라하며 방문을 나섰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리고 짐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오후 5시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직원이 알려준 편의점에 다녀오고 싶었다.  해매지 않기 위해 해가 있을 때 움직이고 싶었다. 다행히 날이 풀려서 호텔 밖은 산책하기에 적당했다. 아니 시원하고 상쾌했다. 호텔 건물 옆에 상상마당 아트홀 건물을 끼고 산책로를 걸어보았다. 어차피 편의점가는 길과 겹쳤다. 호텔 안에서는 호수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아트센터쪽으로 올라와보니 바로 앞에 호수가 있었다. 말로만 듣던 춘천의 호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아트센터와 의암호가 잘 어울어져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호수는 정말 고요했다. 잔잔한 물 위로 맞은 편 낮은 산들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호수를 감싸듯 조성된 산책로는 걷기에 참 좋았다. 강물이 바로 옆에 흐르는 듯 가까왔고 늦가을 바람이 적당하게 불어왔다. 사방은 고요했고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소곤거리듯 했다. 산책나온 개들 조차 소리없이 지나갔다.


편의점에서 물과 주전부리 몇가지를 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상상마당  아트센터 내부를 둘러보았다. 독립출판물 전시가 있어서 구경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만들고있구나. 그것도 이렇게 근사하게. 그들이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이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건물 안쪽으로 야외 원형극장이 눈에 들어왔다. 낮은 계단을 몇 개 오르면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되 듯 가운데 넒은 공간에 서게 된다. 무대 앞으로는 관객석이 차츰 경사도를 높이며 놓여져있다. 관색석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앉아보았다. 돌아서 무대 쪽을 보고 나는 와하고 낮은 탄성을 질렀다. 무대 위로 마치 강물이 흐르는 듯 의암호의 풍경이 공연장을 채웠다. 너무나 근사했다. 가운데 사각 공간을 만들고 그 양쪽에 건물 A와 B를 직각삼각형모양으로 배치해놓았다. 결국 양쪽 건물은 관객들이 무대에 시선을 모으기 위해 세워진 것같기도 했다. 무대에 배우가 없어도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만으로도 무대가 꽉찬 느낌이었다.


 나는 마치  한편의 공연을 보듯 한참을 관객석에 앉아서 강을 바라보았다.


흐르지 않는 듯 흐르고 있을 그 물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많고 날이 흐렸다. 구름낀 하늘 아래 미동도 없이 강물이 산을 애워쌌다.

사방의 풍경이 잔잔한 물 위에 비췄다.

낮게 깔린 산이 물을 만나고 그 물 위에 또 다른 산을 조용히 품고 있었다.


상상마당의 건축물이 늦은 오후 뜻하지 않은 조용한 파문을 일으켜주었다.

나는 그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나중에 이 사진을 보면  지금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숙소로 돌아와보니 호텔 건물에 따뜻한 조명이 들어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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