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은 Nov 16. 2019

희주와 선영

어느 특성화고 교사의 하루


선영이 희주의 상황을 접하게 된 것은 현장실습 기간이었다. 말이 좋아 특성화고 현장 실습이지 실상 미성년 학생들이 저임금을 받으며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에 가까웠다. 며칠 전 선영은 인사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작년처럼 중도 포기하거나 상급자와 마찰이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며 거듭 학생단속을 부탁했다. 깜짝 놀랄 정도의 업무 강도를 생각하면 아이들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근로기준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업체도 많아서 당장 돈이 급한 아이들이 아니라면 굳이 실습을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희주는 가장 먼저 실습을 신청한 학생이었다.


선영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A업체 실습 첫날인 아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출근 시간에 맞춰 잘 도착했는지, 직원들에게 인사는 잘했는지 등을 물었다. 실습 담당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체크했다. 오전 수업이 빽빽하여 쉬는 시간에 업무를 보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무단결석을 한 희주에게 연락한다는 것을 깜빡하였다. 결석 한번 없던 희주가 아직까지 등교를 하지 않았다. 가끔 지각을 하긴 했지만 늘 죄송하다는 문자는 보낼 줄 아는 학생이었다.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내일은 희주의 현장 실습 시작일이었다. 


출근길 엄마의 말 때문에 선영은 머릿 속이 복잡했다.

 ‘임용고시 공고 떴더라. 마흔이 낼모레인데 언제까지 거기서 계약직할거야. 쥐꼬리만 한 월급 받으면서 몇 년 썩었으면 정신 차려야지. 서울대가 다 무슨 소용이야.’

어젯밤 선영의 침대 위에 있던 임용고시 개정판 교재는 분명 엄마가 올려놨을 것이다. 엄마는 선영의 직장 얘기를 꺼낼 때면 언제나 날선 목소리를 내곤 했다. 선영이 대학원 과정을 마쳤을 때만 해도 이 학교에서 오래 일할 줄 몰랐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아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상황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영은 가족의 의료보험료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메모가 있었다. ‘서울시 가정폭력 상담소. 희주 문제로 연락 달라고 했습니다.’ 선영은 메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주 째 희주가 상담에 오지 않네요. 어제도 상담일인데 안 나타났어요. 전화도 안 받고요. 걱정이 돼서 연락드렸습니다.' 

상담소 소장으로부터 희주의 상황을 자세히 들었다. 희주는 아버지의 폭력문제로 6개월 전 상담소를 처음 찾아왔었다고 한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희주 언니가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고 그곳에서 자매를 상담소로 연결해주었다. 


선영은 일찌감치 희주를 보낼 업체를 정해놓고 있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평소 성실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면 업무강도가 센 곳에서도 잘 버틸 거라고 생각했다. 희주는 평소 뜯어진 치맛단을 휘날리며 친구들과 복도를 뛰어다니다가도 선생님들이 지나가면 언제나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했다. 언젠가 희주를 맡았던 동료 교사로부터 희주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말은 얼핏 들었다. 상담을 하다보면 한부모가정, 기초생활수급자, 보육원 거주자까지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이 많았다. 희주도 비슷한 처지의 아이라고만 여겼고 가족문제에 대해 희주가 먼저 얘기한 적도 없어서 선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상담소 소장과 통화를 끝내고나서 몇 분 뒤 선영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희주였다. 학교 근처 카페에 있다며 잠시 만나자고 했다. 카페로 달려 나갔다. 구석 자리에 희주가 보였다.  ‘죄송해요. 샘한테 저희 집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저희 엄마도 매 맞고 살다가 제가 중학교 때 집을 나가셨어요.'


선영은 희주의 몸 상태부터 살폈다. 아빠의 발길질에 이러다 죽겠다싶어서 집을 뛰쳐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큰 외상이 없어보였지만 아이는 지쳐보였다. 어제는 언니와 모텔에서 잤다고 했다. ‘왜 선생님한테 먼저 연락을 안했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잖아.’ 선영은 자신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 나왔다. 친아버지의 폭력을 피해서 도망친 아이에게 담임이란 사람이 비난의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선영도 이런 상황에서 뭘 어찌해야 하는지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영은 아이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마다 어려웠다. 틈틈이 상담심리기초, 청소년진로상담 등에 관한 공부도 했다. 먼저 상대를 이해하면서 경청하라고 했던가. 라포를 형성하라고 했던가. 막상 희주 얼굴을 마주하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데 말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선영이 아버지를 만나보겠다고 하자 희주는 손 사레를 쳤다. 고모도 포기한 사람이라고. 


‘샘, 사실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3일만 실습 미루면 안 될까요?’ 


갑작스런 희주의 요구에 선영은 당황스러웠다. 온갖 행정 절차며 실습업체 담당자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선영은 이유를 물었다. 

그냥 답답해서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했던 제 자신이요. 그런데 학교 밖 세상으로 나가면
그런 가면 얼굴이 100개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숨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영은 건네주려던 말들을 다시 목구멍 속으로 꾹 눌렸다. 위로의 말 몇 마디하고 달래서 내일 실습 보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그런 말을 바라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 직원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하기로 약속한 거잖아. 업체 눈 밖에 나면 어쩌려고. 학교 입장도 그렇고. 힘들겠지만 조금 더 힘내보면 어떨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주는 당분간 이모 댁에 머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모도 자매를 거둬줄 형편은 못되는지 오래있지는 못한다고 했다. ‘돈 벌면 언니랑 같이 살 방부터 알아보려고요‘라고 말하며 희주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헤어지기 전 희주는 내일 출근 잘 할 테니 걱정 말라며 선영을 안심시켰다.


카페를 나서면서 선영은 희주에게 같이 저녁 먹을까하고 물었다. ‘아니에요. 근처에서 언니가 기다려요’라고 말하며 90도로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선영은 아이의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게 바라보았다. 희주가 멀어져가 갈수록 자신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이라면 학생에게 정답을 알려줘야 마땅할 텐데. 자신은 그런 줄 알았는데. 문득 발사이로 찬바람이 느껴졌다. 선영은 자신이 교무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서둘러 교무실로 돌아와 보니 대부분 퇴근하고 교감과 교사 서너 명만 남아있었다. 오늘은 꼭 정시 퇴근을 하리라 다짐했는데 역시나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으려는데 탁상용 달력에 표시된 빨간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왔다.


중등 임용고시 시험 접수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지출처: 영화 '벌새' 한장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