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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May 19. 2020

처음으로 단편 소설을 쓰다

제목 '들꽃' 


원고지 100매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구상한 날들까지 포함한다면 소설 완성까지 거의 두 달은 걸렸던 것 같다. 3-4주는 생각나는대로 마구잡이로 썼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플롯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적었다. 단편적인 사유들이 하나의 파일에 차곡차곡 쌓였다. 자료조사를 위해서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뒤졌다. 필요한 자료들이 나오면 같은 파일에 따로 모아서 정리했다.  

어느 정도 내용이 채워지고나서 플롯을 생각해보았다. 이 작업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주인공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나.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그 과정에서 생각도 많이 하고 나의 삶과 연결지어서 사는 것에 대한 고민도 많이했다. 소설작법책도 뒤져보고 강사가 했던 말들도 참고했으나 그야말로 참고일뿐이었다.  내 소설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너무 잘 쓰려는 노력을 내려놓고 되던 안되던 일단은 떠오르는대로 기록했다. 그냥 내 방식대로 쓰기로 했다.


김세희 작가는 처음 소설을 쓸 때 자신이 생각해둔 괜찮은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제를 먼저 정하고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 장면을 포착한 후 이야기를 만들면서 하고싶은 말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무리 부분이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도 했다. 어쩌면 나 또한 작가와 비슷한 방식으로 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경력단절을 때문에 고민하는 주인공 경희,  아내, 엄마, 며느리 역할에서만 머무는 전업주부 수민, 경희의 대학 동창이자 커리어우먼인 수혜. 이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적 책임감이나 목표의식이 없는 어떤 개인을 바라보는 경희의 시선을 소설의 첫 장면으로 그렸다. 다른 인물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희는 과연 그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는 과정을 소설 전개 과정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소설의 출발점을 정한 후 여러 사건들을 전개시켰고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주제가 드러날 수 있도록 애썼다. 결국엔 잘 되지는 않았지만. 


소설적 표현력에서는 당연히 부족한 것이 많았겠지만 나는 실망하고 싶지 않다. 처음이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 다행히 문장에 대한 지적은 별로 듣지 않았다. 빠르게 잘 읽힌다고 했다. 비문도 거의 없었다. 강사는 내 소설을 분석해주면서 복지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사업들을 더 넣어서 장편으로 늘려보라고 추천해주었다. 장편을 쓰는 특별한 소설 기법이 따로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장편은 단편에서 나오는 7-8개의 에피소드를 모으면 된다고 했다. 장편 수업에서 배우는 것도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것을 구성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내가 벌써 장편을? 글쎼, 지금 장편을 쓰라는 말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에게 뛰어보라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아마 때가 되면 장편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같이 합평을 받았던 30대 여자분의 피드백이 기억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역시 좋은 말이라서 그럴까. 

“소설에 나오는 이기적인 엄마들 있잖아요. 저는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숨비소리 장면을 읽을 때는 눈물이 나더라고요. 엄마얘기요. 그리고 마지막에 봄까치꽃도 좋았어요.”


비록 강사는 너무 작위적이라며 꽃이란 소재가 별로라고 평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이라도 내가 의도한 것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또 다른 30대 남성 수강생은 제주도 묘사가 좋았다고 말해줬다. 특히 '해남'에 대한 자료를 자신도 찾아보았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잠수 수트 얘기를 보았다고 해서 잠시 그 얘기를 나눴다. 누군가와 공감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지 못했고 소설 구성에도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본식 희곡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갈등을 겪다가 연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의 구조가 거의 같다고 했다. 그런 장르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내 소설의 플롯을 그렇게 한 줄로 요약하니 정말 형편없게 들렸다. 어떤 부분은 소설이라기보다 줄거리의 요약처럼 읽혔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제주도 설정이 불필요해 보인다고도 했다. 제주도를 없애고 사업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춰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내가 과연 단편소설 원고분량을 채울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으로 시작했는데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다른 수강생의 작품을 함께 읽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 소설쓰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이어서 비슷한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소설에 도전했을까. 비록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수강생들의 소설 안에는 살아온 인생과 그들의 꿈이 어렴풋이 녹아있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세계 속에서  인물들이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소설을 쓰는 과정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만든 소설이란 집은 아직 허접하고 수리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어떤 형태를 갖추어서 완성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뿌듯했다. 소설적 완성도를 떠나서 쓰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내가 쌓아올린 세계 속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내 삶을 돌아보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수업  마지막 날, 싸인을 받기 위해 강사의 소설집을 들고갔다. 

그가 속지에 적어준 글귀처럼 나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고 즐겁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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