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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a Apr 08. 2024

1화: 뉴욕주 1년차 변호사 신소연

나는 뉴욕의 초보 변호사 신소연입니다.


이 글은 미국 맨하튼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오전 7시 30분.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연은 하얀색 듀벳 커버로 된 침구를 몸에서 걷어내며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놓지 않았지만 창 밖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연은 천천히 창문으로 다가갔다. 암막커튼을 걷어내자 맨하튼이 내려다 보였다. 소연은 현재 맨하튼 어퍼웨스트에 위치한 주상복합 아파트 30층에 살고 있었다. 그녀의 고층 아파트에서는 센트럴 파크와 허드슨 강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 앞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연은 익숙하게 창문 앞에서 기지개를 펴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최근 구입한 이솝의 헤어 및 바디 제품으로 샤워를 마친 그녀는 신상 다이슨 에어랩으로 머리를 말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화장대를 방불케하는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마쳤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넓은 그녀의 옷장에는 전날 벗어둔 옷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그녀는 수많은 옷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입는 띠어리 바지정장 세트를 꺼낸 뒤 이를 실크 블라우스와 함께 매치했다. 전신 거울을 들여다보니, 아침 햇살이 반사되면서 그녀의 아르마니 실크 블라우스가 더욱 환하게 빛난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오전 8시. 그녀는 익숙하게 우버를 불렀다. 그녀가 다니는 미드타운 웨스트에 위치해 있는 로펌은 도보로 30분이 걸렸다. 우버 비용이 30달러를 상회했지만 그녀는 아침부터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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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한국 명문대를 졸업하였다. 해외 주재원 파견을 자주 나간 그녀의 아버지 덕택에 그녀 역시 유년 시절을 해외에서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재외국민 특례 전형을 통해 명문대 국제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고,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다. 소연은 고등학교 재학 당시 자신보다 성적 높았던 친구들에 비해 성공적인 대학 입시를 마쳤다. 그녀는 그녀의 명문대 타이틀 역시 그녀 스스로의 운과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외동딸이었던 소연은 그녀의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대학교 재학 당시 그녀는 방학마다 미국 단기 체류를 하며 어학연수를 받았고, 취업에 대한 걱정 없이 미국 로스쿨 입학 시험 준비도 할 수 있었다. 미국 로스쿨 입학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경력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명문대 대학원에 등록할 것을 독려하였다. 비록 석사 학위를 취득하지는 못하였지만, 미국 로스쿨 입학 지원 절차에서 '명문대 석사 과정 중'이라는 내용을 당당하게 적을 수 있었다.


1년 전 5월, 그녀는 미국 메사츄세츠주 소재 보스턴 대학 로스쿨을 졸업했다.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면 수억원의 빚이 생긴다고 하나, 그녀는 빚에서도 자유로웠다. 부모님이 이를 전부 지원해주었기 때문이다. 졸업 후엔 뉴욕 맨하튼으로 이사를 하였다. 7월까지 뉴욕주 변호사 시험 준비를 하고, 9월부터는 졸업 전 미리 합격해둔 로펌에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 그녀 스스로는 맨하튼 어퍼이스트 30층 아파트 월세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지만, 그녀의 부모는 매달 한화로 수백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지원해주며 소연이 편안하고 안전한 최고의 환경에서 미국 변호사시험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그녀가 9월부터 로펌에 출근하며 월급을 받기 시작했을 때도, 그녀의 부모는 월세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소연에겐 세상이 너무나도 안락했다.


우버에서 내린 그녀는 지미추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로펌 건물로 들어섰다. Venstone LLP. 대형로펌은 아니지만, 미국 전역 100위 안에 드는 유명로펌이다. 현재 1년차 변호사인 그녀는 1-2년 정도 현재의 로펌에서 경험을 쌓은 후 10위권 내의 대형로펌으로 이직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녀의 첫 취직은 성공적이었다. 미국에서는 그녀가 한국 소재 대학교를 특례로 입학했는지 여부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녀의 명문대 학사 학위와 국제학부 내 전공을 높게 샀다. 그녀는 미녀 명문대 졸업생이자 미국 로스쿨 졸업생이나 맨하튼 중심 유명 로펌의 어쏘(associate)인 자신의 현 상태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맨하튼 중심의 로펌이라니! 이 모든 것들은 뛰어난 그녀의 능력 덕분이라는 부분엔 한점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건물 내로 자신의 지미추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질 수록 그녀의 자신감은 한층 올라갔다.


오전 8시 30분.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 도착한 소연은 하이힐을 벗었다. 하이힐은 그녀의 자신감과 지위를 보여주는 수단이었기에 홀로 있는 공간에서는 굳이 신고 싶지 않았다. 비록 다른 외국인들에 비해서는 작은 체구였지만, 163cm인 그녀로선 10cm 하이힐로 충분히 자신감을 돋보일 수 있었다. 그녀의 자신감은 외적인 부분에서 더더욱 힘이 실렸다. 소연은 컴퓨터 전원을 켠 후, 최근 구입한 네스프레소 버츄오 머신에서 캡슐 커피를 내렸다.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는 동료들도 많았지만, 그녀는 커피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는 등의 작업을 거치고 싶지 않았다.

아직 1년 차에 불과한 소연의 사무실은 다른 변호사들만큼 전망이 좋지는 않았지만, 브라이언트 파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다운타운에서 근무하는 다른 변호사들이 느낄 수 없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기분이지’. 아직 뜨거운 바닐라 라떼 한잔을 마시며 사무실 창 밖을 보는 기분은 남달랐다. 그 사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무실 밖 풍경은 아침인데도 어두워져갔다. '일이나 하자'. 소연은 창문을 떠났다.



"좋은 아침! 주말에 시간 어때? 내 친구들이랑 센트럴 파크에서 피크닉하자!".


휴대폰이 진동하며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재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소연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재희를 아파트 루프탑 라운지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그 후로는 함께 식사하는 등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최근 이들의 주요 대화 내용은 연애 그리고 커리어였다. 비록 둘다 연애를 제대로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소연은 재희의 메시지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답장을 하지 않았다. 한번 재희에게 답장을 하게 되면 계속적으로 문자가 이어져 업무에 지장이 올 것이 당연히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답장을 미뤄두기로 하였다.


로펌에서의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파트너 및 다른 어쏘들과의 오전 미팅. 법률 및 판례 검토. 마음은 파트너 변호사였지만, 1년차 변호사에 불과한 소연에게 중대한 업무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주 업무는 판례, 법률 검토 그리고 서면 초안 작성 등이었다. '대체 이렇게 일을 해서 내가 언제 M&A 전문가가 되는거지?', '내가 하는 업무가 언제까지 파트너 이름으로 나가야하는거지?' 등의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중요한 업무를 맡기에는 아직까지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민도 잠시. 다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오후 5시. 기업 자문팀 소속 파트너 변호사로부터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금일 7시에 열리는 아시안 변호사회 신년 파티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아시안 변호사회 네트워킹 모임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변호사가 된 이후로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함께 나갈 사람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혼자 나가가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찰나에 네트워킹 모임 참석 권유를 받다니. 소연은 이번이 중요한 기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트워킹 모임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의 연이 닿는다면, 향후 이직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또래 변호사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50분. 소연은 화장을 재정비하고 사무실에 놓여있던 딥디크 향수를 뿌린 뒤 사무실에 놓인 전신 거울로 마지막 점검을 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돋보이고 싶었다. 머리를 한번 더 정돈을 한 뒤 우버를 불렀다. 모임 장소까지 흐트러진 모습으로 가고 싶진 않았다. 심지어 밖은 비가 내렸다. 어디에서든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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