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오늘 아침 해가 난 틈을 타 주유도 할 겸 장을 보러 갔다 이곳 주유소 gas비가 저렴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게 되는데 오늘은 유난히 카트에 휴지를 가득 싣고 오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인다 어제는 집에 쌀이 떨어져 쌀을 사려고 마켓을 몇 군데나 돌았었다 결국 집에서 한참 떨어진 한인 마트에 가서 평소에 먹던 8kg가 아닌 18kg짜리 쌀을 샀다 마트에 쌀이 이것밖에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얼마 전 캐나다 보건부에서 식료품과 의약품 1~2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을 비축해 두라는 메시지가 있어, 지난주는 쌀이랑 물을 카트보다 높게 싣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품목이 휴지로 바뀌었다 어젯밤 우연찮게 친구네 집들이에 갔다가 현지인들이 휴지를 사재기하는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마스크 만드는 재료가 휴지 만드는 재료와 같아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지면 휴지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짜 뉴스. 캐나다가 망해도 나무는 남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나무가 많아 그것으로 먹고사는 캐나다에서 캐네디언들이 휴지를 사재기하는 모습을 보니 바이러스 보다 무서운 것이 어쩌면 보이지 않는 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뉴스를 소설처럼 만드는 변형 바이러스들. 진짜를 볼 수 없게 만드는 수많은 가짜들 사이에서 내 눈이 피곤한 이유다
이 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식 스파게티 집이 생각난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길 가에 있어 늘 지나쳤던 스타벅스를 마음먹고 들렸다 들어서면서 느낀 건 부조화. 주문하는 곳과 커피를 마시는 곳이 서로 다른 세상인 듯한 느낌. 뭔가 리노베이션을 하다가 사정이 생겨 커피를 마시는 공간은 나중으로 미룬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하는 곳이다
빛바랜 낡은 의자
낡은 가죽 의자. 사실 재질이 가죽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났을까ᆢ 사람들이 어깨를 기댄 자국이 조용히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주문하는 곳. 모던하고 깨끗한 느낌.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엄마가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한다 아이가 자는 동안 마시는 달콤한 커피.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 미소 뒤에 아이가 깨지 않고 좀 더 오래 자기를 바라는 엄마의 작은 소망이 보인다 좀 더 달달하게 직원이 캐러멜 시럽을 더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하길 바라며 넓은 테이블 구석에 커피와 물과 탄산 음료수 병을 올려놓고 컴퓨터로 뭔가를 쓰고 있는 여자에게 눈을 돌렸다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걸까
음료수 병과 컵에 담긴 물의 양을 보니 내가 오기 한참 전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듯. 컴퓨터 자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스크롤을 내리기도 하고 턱에 손을 괴고 한참을 생각하기도 하고ᆢ 아마도 다 쓰고 검토를 하거나 아니면 한참 뭔가를 쓰다 글이 막혀 전에 쓴 것을 보며 이어 갈 내용을 생각하고 있는 듯.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맞는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을 보며 내가 상상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카페에서 글쓰기를 하는 이유도 뭔가를 쓰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하는 사람을 상상하는 것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라 아무래도 여자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여자는 컴퓨터 자판에 손을 못 올려놓고 있다 괜히 내가 조바심이 생긴다 드디어 여자가 자판 위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다 여자의 손가락이 피아노 위에서 물고기처럼 뛰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