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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Mar 13. 2020

소설도 아닌 것이 수필도 아닌 것이 2

비처럼 음악처럼 Starbucks Johns St, Port Mood


주차공간이 옆에 있어 편리하게 이용했던 곳

을 여는 순간 커피 향보다 음악이 먼저 아는 척을 한다
이곳은 늘 재즈 음악이 흐르는 곳이다
그래서 커피 소주가 생각나는 곳이다
커피 소주.
소주든 맥주든, 위스키든 알코올의 종류와 상관없이 맥주컵 반 잔 정도면 취하는 나의 주량을 보시고 전에 다니던 성당 신부님께서 만들어 주신 제조주 이름이다
신부님께서는 나 같은 사람은 술이 아니라 술의 향에 취하는 거라 하셨다
그래서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거라시며 술에 커피를 타 주셨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술자리엔 으레 커피를 가지고 갔던 것이.
그리움이란 이렇듯 예고도 없이 찾아와 빈 가슴에 찬바람을 불어넣는다
더욱이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재즈가 흐르는 날엔 더욱더.
오늘은 왠지 커피에 우유를 타고 싶지 않다
우유로 인해 커피 온도가 내려가는 것도, 커피색이 흐려지는 것도 싫어서..
제목도 모르는 재즈에 마음을 다 내주며 평소보다 뜨거운 커피를 두 손으로 모아 쥐고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본다


뜨거운 커피와 재즈 음악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한 남자가 비를 맞고 서 있다
모자가 달린 겉옷을 입었음에도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손을 뻗어 빗방울을 손바닥 위에 가만히 얹어보기도 하는 모습이 왠지 비를 처음 보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창 밖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려는지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턴다
그녀는 그 남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문을 열고 남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기억했다
며칠 전 그녀의 동전을 주워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던 남자였다
어제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손이 아닌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손에 들고 다니다 어딘가에 두고 오는 경우가 많아 그냥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주로 자기 전에 핸드폰 확인을 하는데 그의 이름이 부재중 전화에 있었다
동전 남자.
그녀는 그를 그렇게 저장했었다
동전.
그를 만나야 할 이유였다

남자는 구석진 창가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남자가 주문한 것을 들고 빈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남자의 뒤에서 남자의 모습을 본다
그녀는 물건을 사도 뒤집어서 뒷면을 먼저 본다
모든 상품은 뒷모습에 놓치면 안 될 것들이 적혀 있다
그녀는 적혀 있어야 할 것이 빠져 있는 상품은 사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뒷모습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좋다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뒷모습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궁금했다
한 손으론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론 책장을 넘기고 있다
그녀는, 주문한 것을 마시지도 않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풀어놓은 이야기가 꽉 조여드는 부분을 읽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옳지 않은 것을 마치 옳은 일인 양 뻔뻔하게 설득하는데 묘하게 설득당하고 있는 노통브 소설을 읽고 있는 건가ᆢ
그녀는 안으로 조여드는 그의 두 어깨에서 긴장감을 느꼈다
그리고 은유로 가득 찬, 그래서 읽기는 하지만 읽지 않는 것 같다는 프레텍스타 (노통브의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에 나오는 작가)를 그의 뒷모습에서 보았다
그의 어깨가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녀는 45도만큼 기울어진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녀는 아까부터 만지작거리고 있던 핸드폰을 들고 최근 기록을 확인한다
그녀의 손가락이 동전 남자라고 적힌 연락처를 눌렀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 네. 알아요. 동전!
- 네. 맞아요. 어제 전화를 못 받아 죄송했어요.
- 아니, 괜찮아요. 어제 만나서 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 저 혹시 괜찮으시면 지금 주실 수 있을까요?
- 네? 지금요? 지금은 제가ᆢ 어! 어떻게 여기ᆢ
- 그러게요. 여긴 제가 재즈 음악 생각날 때 들르는 곳이 거든요.
- 그렇군요. 저는 비 맞으러 왔는데ᆢ

그와 그녀는 이렇게 다시 만났다
비처럼 음악처럼.




소설도 아닌 것이 수필도 아닌 것이.

결국 쓰고 있네요

현실 속의 사람들을 소설 속의 인물로 끌어들이는 일.

그들이 소설 안으로 들어가서 만드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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