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액 연봉도 부질없이 느껴지는 번아웃 (1)

커리어 정점에 퇴사를 할 수 있던 이유

by 젤리명은

커리어 정점에 퇴사를 할 수 있던 이유

처음 직면한 바보 같고 미련한 '나'의 모습

처음 직면한 바보 같고 미련한 '나'의 모습


살면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단 한 번을 경험하기도 쉽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단, 스스로 직접 심리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린다면 모를까. 아, 요즘은 세상이 좋아졌으니 비대면 심리 상담 앱을 접해볼 수도 있겠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 눈을 떠야 한다는 사실이 참 두려웠다. 모두가 잠드는 깜깜한 밤이 되어도 내 눈은 말똥말똥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마치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겨우 잠이 들어도 선잠을 잤다. 흔히들 이런 증상이 보이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위해 새벽 6시 반에 눈을 떴다. 한참을 눈을 뜬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은 침대 위에 있던 핸드폰을 쥐었다. 핸드폰을 쥔 내 손의 오른 손가락은 차례대로 1, 3, 9, 3 그리고 통화를 터치하고 있었다. 맞다.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자살 예방 상담 센터의 대표번호이다.


통화 연결음과 안내음이 얼마간 흘렀다. 그리고 자살 예방 상담 센터의 상담사님과 통화연결이 됐다.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상담사님의 물음에 나는 내 속의 있는 그대로의 말을 거의 뇌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뱉었다.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무서워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정형화된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나를 실망하게 하는 멘트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상담사님의 처방 아닌 처방에 수긍하며 얼른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한 상태 그대로 출근해도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회사에 연락해 양해를 구하며 연차를 냈다. 그리고 다시 녹색의 검색 창에 '심리 상담 센터'를 검색했다. 당장 상담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을까?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심리 상담 센터를 찾아 상담 예약을 했다. 다행히 1시간 뒤에 상담할 수 있다고 했다. 살면서 처음 방문해 보는 '심리 상담 센터'의 문을 열면서 드는 기분은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상담사님과 마주 본 나는 상담사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회사에 다니며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내게 가장 크게 와닿은 스트레스 요인은 인간관계에서 온 요인이 컸다. 상담사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다가 역할 바꾸기 상담을 진행해 주셨다. "제가 명은 씨가 되어 명은 씨가 해주신 말씀대로 대답할 테니, 직장에서 함께 하는 주변 인물이 되어 보세요."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너 지금 바보처럼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얼른 정신 차리고 너 자신을 찾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경고 표지판을 맞닥뜨린 기분이랄까? 그리고 아침부터 열려있던 눈물샘이 다시 터졌다. 나는 왜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회사를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달려온 걸까? 허무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더 나를 잃기 전에 기회를 얻은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길에 결혼해서 서울 시민이 된 언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덤덤하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언니, 나 회사 그만둬야 할 것 같아'를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언니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다가 그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평생 엄마 아빠 언니한테 치여서
네가 너무 많은 부담을 안고 살다가
이렇게 팍 터져버린 거 같아서
언니가 정말 미안하고 속상하다

엄마 아빠는 몰라도 언니가 너를 위해서는 뭐든 해줄 테니까 의심하지 말고. 언니가 성격상 가끔 너무 이성적으로 말하는 거는 너무 괘념치 마. 너 생각하다 보니 자꾸 그렇게 말이 나온다.

명은아 회사 안 다녀도 되니까 마음 놓고 그냥 푹 쉬자


그날 나는 '나'를 찾고, 잊고 있었던 사실을 알았다. 내 주변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뒤 회사에서도 마침 상황이 좋지 못해, 퇴사를 당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일자리보다 더 큰 것을 찾았고, 깨닫게 되어 불안하기는 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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