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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한 김단단 May 29. 2020

스물다섯에 비행기 처음 타봤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부산에 살고 있고, 일이 있어 서울에 들르게 되었다. 마침 죽마고우가 서울에 살고 있어서 그 친구의 집에 며칠 묵을 수 있는지 전화로 물어봤다.


친구: "여보세요?"

나: "어, OO. 내다음주에 서울 올라갈 일 있는데 혹시 재워줄 수 있나?"

친구: "당빠지 풀코스로 대접할테니까 조심히 올라온나. 근데 니 뭐 타고 오노?"

나: "음... SRT타고 갈 거 같은데?"

친구: "야, 부산에서 서울 오는 거면 비행기 타고 오는 게 훨씬 빠르고 돈도 더 쌀 걸? 또 니 집 근처에 공항있다매?"

나: "공항이랑 가깝긴 하지... 근데 걍 SRT타고 갈란다."

친구: "그래 알겠다. 조심히 올라 온나."


실제로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가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SRT보다 더 싸고 시간도 두 배 좀 안되게 빠르다. 그런데도 나는 SRT를 선택했다. 왜 나는 굳이 더 비싸고 오래 걸리는 불편한 선택을 했을까?


나만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유독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낯선 상황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불안하기도 하고 내가 잘 모르니까 뭔가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태어나서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봤고, 나는 비행기를 타는 것에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늘 타왔던 SRT를 선택했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서울에 도착했고 일처리를 하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른이 되어 소소하게 친구들과 마시는 캔맥주는 고교시절의 컵라면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취기가 어려서 그런지 즐거움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 친구는 다시 한 번 비행기를 타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 "야, 지금 비행기표 가격이라도 함 봐봐. 비행기가 진짜 훨 낫다니까?"

나: "그런가..."


나는 비행기가 낯설어서 여전히 비행기를 별로 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성화에 못이겨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검색해봤다. 검색결과를 보니 왜 친구가 그렇게 비행기 타라고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SRT는 약 3시간이 걸리지만 비행기는 50분이면 도착했고, 비행기 가격이 두 배 정도 더 쌌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친구 말 듣고 비행기 알아볼 걸..."


나는 바로 비행기 표를 끊고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안에 들어가 본 게 처음이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비행기 타는 게 뭐라고 내가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나조차도 의아했다. 나는 비행기에 탑승했고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부산에 도착했다.


이번에 비행기를 타면서 낯선 것을 기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전에 비행기라는 선택지를 골랐다면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랬다면 이미 지금쯤 비행기가 나에겐 '익숙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도 언젠가 낯선 것이었을 때가 분명히 있었을텐데, 나는 왜 그걸 몰랐던 걸까? 참 눈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게 아니고 배웠다고 다 아는 게 아니라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그 후로 내 방 풍경도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들도 처음엔 낯선 것이었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내 방 물건들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분명 달라진 건 없는데 뭔가 새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내 베개는 당연한 게 아니었다. 아들 편하게 자라고 부모님이 돈 벌어서 사주신 감사해 마땅한 물건이었다. 옷도, 이불도, 크림도 감사할 이유가 없는 게 없었다. 낯선 것은 항상 나쁜 느낌만 불러 일으킨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경험이었다. 비행기 탑승이 이렇게나 많은 걸 가르쳐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비행기 비행기 노래를 부르던 친구에게 기프티콘이라도 하나 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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